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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우 칼럼(3) 제주헬스케어타운, 무엇이 문제인가
강경우 칼럼(3) 제주헬스케어타운, 무엇이 문제인가
  • 나는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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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8 14:4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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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우 시인
예로부터 한라산은 삼신산(봉래, 방장, 영주)의 하나로 영주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창조의 여신 마고할미의 산이라고도 하였다. 그 이름처럼 넉넉한 할미가 치맛자락을 펼쳐 앉은 듯 산세(山勢)는 부드럽고, 탁 트인 벌판 군데군데에 여인의 젖가슴인 듯 오름은 봉긋하다. 봄이면 철쭉꽃 붉은 아지랑이의 선율을 타고 옥구슬 구르듯 제주휘파람새의 청아한 울음소리와 더불어 겨우내 굳었던 땅거죽을 뚫고 하루가 다르게 밀어 올리는 고사리 손의 경이로움 같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고, 여름이면 땅속 흐르던 물 불쑥, 용솟음쳐 치솟는 누님의 바다에선 하아! 숨빗소리, 그 멀어서 가까운 소리가 아이들 소리에 섞여 노을빛 하늘로 사라질 때쯤, 부우우! 대양을 돌아든 배는 항구에 닻을 내리기도 하였다. 가을이면 말갈기 날리며 달려온 바람이 거대한 솔개처럼 오름 등성이로 날아오르는 억새꽃 하얀 물결의 장관은, 이곳 제주에만 있었다. 내다보면 창망한 바다의 에메랄드빛 물에 눈이 시려서 돌아서면 구름 위에 산, 이 얼마나 축복받은 섬인가. 하지만 그 모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마을을 벗어나면 산허리를 두른 ‘하잣성’까지는 모두가 마을 공동목장이었으므로 네 땅 내 땅이 따로 없는, 말 그대로 ‘물 건넌 섬’, 영주(瀛州)는 고향이었다. 척박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농사짓고 마소를 키우며 살았다. 잘 살고 못 살고가 없었으며 너나없이 보리밥 아니면 고구마에 나물국 한 그릇이면, 이웃을 사랑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곳마다 철조망이요, 기름 냄새 범벅인 아스팔트와 디젤 굉음만 요란한 낯선 곳이다. 물론 나라 발전에 따라 문명의 발달과 개발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지만 문제는 제주 토속민의 삶까지 송두리째 뿌리 뽑히는 난개발의 현장에서 다수는 온순한 조랑말처럼 순종하고 있다는, 이 현실이 슬픈 것이다. 마치 영국의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 1894~1963) 」가 쓴 『멋진 신세계』의 시험관에서 배양된 인조인간들처럼 말이다.

지지난 봄 어느 날, 나는 조상의 제사상에 올릴 고사리를 캔다고 운동 삼아 서귀포 뒷동산을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 서귀포 동홍동과 토평동의 뒷동산, 46만 6천 평의 광활한 땅이 헬스케어타운부지로 조성된다는 팻말과 함께 여기 저기 패인 무덤을 보면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앞으로 제주에만 있는 특이한 양식의 무덤을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서귀포 일대에는 산과 마을 사이에 원시적인 완충지대가 전혀 없게 되었다고 하는 그런 것 때문이었다. 동시에 걱정스러운 것은 물 문제였다. 그 일대에서 스며든 물이 돈네코 계곡에서 솟아 흐르고, 또 그 물은 정방폭포의 정방천과 천지연폭포의 선반천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물도 고지대의 서어나무 군락지에서 스며든 것이 대부분일 테지만, 물이란 산에서 넘치면 흘러내리면서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자명한 것이라고 보면, 46만여 평의 광활한, 비교적 평탄한 땅의 개발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 넓은 자왈은 폭우로 넘친 물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역할과 함께 빗물을 지하로 내려 보내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역할을 할 땅이 없게 되었다. 상식적으로도 분명한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간단한 상식적 산술로 계산해보아도 우량계의 직경 20cm의 넓이(πr2)는 314c㎡가 되므로, 강우량 10밀리일 때 그만한 넓이에 내릴 우량은 (1,539,013㎡ / 0.314 x 0.01)=49,013.152가 되어서, 약 4만9천 톤이다. 만일 짧은 시간에 50밀리의 비만 내려도 24.5만 톤이 되는데, 그땐 어찌 할 것인가. 땅 속으로 스며들 여지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배수로를 통해 흘려보내야 한다. 문제는 ①그 양을 처리할 만큼 배수로가 건설이 되겠느냐 하는 것과 ②완만하다가 갑자기 급경사가 되는 동·서홍의 절벽 같은 지형은 어떻게 순통(順通)할 것이며, 또 ③그 물을, 서귀포 시내를 지나는 좁고 얕은 개천이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지구의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바람과 물난리를 겪고 있다는 것, 우리는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 해도 이는 모두 예측 가능한 것으로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더해서 정방천, 선반천의 수량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스며드는 물도 없게 되었고, 또 상당한 용수를, 그 시설에서 퍼 올려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물 없는 천지연폭포, 물 없는 정방폭포! 생각하기조차 끔찍스런 일이 될 것이다. 그땐 무엇을 가지고 서귀포가 제주의 관광명소라 할 것인가?

몇 년 전, “우리들 병원”이 돈네코 상류에 조성하던 콜프장을 상대로 그 주변 주민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돈네코 계곡을 흐르는 물과, 그 하류의 지하수가 고갈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넓은 거대한 프로젝트가 자신들 머리맡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는데도 서귀포 시민은 물론, 동·서홍, 심지언 돈네코 일원 주민들조차 아무런 반응이 없어 보였다. 호화판 귀족의 영리병원 유치가 주목적이라면서 소득증대가 어쩌고 하는 헛소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귀한 부자가 많아서? 아니면 과수원 등 자신들이 가진 땅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심리에서 잠자코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현장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자손 대대는 원시적인 자울(刺鬱)밭이나 풀밭을 걸어볼 기회가 다시는 없게 되었구나 하는 탄식은, 나 혼자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일개 촌로(村老)로서는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심정이었다. 그 후 공사가 착착 진행되면서 소음과 먼지가 심해지자 공사장 가까운 주민들의 반발이 조금 있었고, 중국인들의 땅장사 속셈을 파악했는지, 도정 및 정치권에서 영구이민목적투자액을 예전보다 높이는 조례개정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주헬스케어 타운 조성 사업을 놓고 '고도완화' 등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히려 동홍마을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중략- 이에 김 회장은 "제주도와 JDC, 그리고 투자자인 녹지그룹은 여론에 좌지우지 되지 말고 성공적인 사업추진을 위해 힘써 달라"며 "여론 및 언론은 문제점 지적과 우려 뿐 아니라 이번 사업이 국내외 선도 사업이 되도록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헬스케어타운이 들어오면 지역에선 작게는 다목적회관 건립을 크게는 지역 주민들의 고용창출 및 지역 농수산물 우선구매 등의 상생을 기대 한다"며 "인근 돈사 및 분묘관련 개인 민원은 지속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2013.12.27. 제주도민일보)./는 보도는

나 같은 촌로로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또 황당하기 그지없는 대목이다. 여기에 무슨 말을 더 붙이겠는가. 그저 대의(大義)를 위한 지극한 충정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자본의 속성이란 당일 은행 마감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과연 그 지역을 위해 그들이 쓰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지방 재정의 세수에는 약간의 도움은 되겠지만 그들의 땅장사로 벌어들이는 것에 비한다면 어림짐작으로도 조족지혈에 불과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폭우라도 내려서 물난리라도 생긴다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않겠는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만 보면 옛날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구약성서의 에덴이나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세계가 우리의 신라 “박재상”의『符都誌』에도 있다. 곧 마고성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고향이다. 낙원이었는데 포도를 따 먹고 하는 소리가 “호탕하구나 혜, 천지여! 내 기운 혜, 철철 넘치도다. 이 어찌된 道인가! 혜. 포도의 힘이로다(浩蕩兮天地 我氣兮凌駕. 是何道兮 萄實之力).” 소위 오미(五味)의 화(禍)라고 하는 것인데, 나는 이 대목에서 예전 강남 졸부들이 왜 자꾸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어부지리로 땅값이 오른다고 하자. 하면 팔고 한잔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게 한 번이면 좋겠지만 그 맛에 빠져버리면, 결국 땅 잃고 돈 잃고, 다시는 원시반본 하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작품 『멋진 신세계』에서 오만한 문명의 발달은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고 하였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동양적 가치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은 동양을 주시하는데 반해, 오히려 우리는 서양을 못 쫓아 안달인 것이다. “고향이란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물질이다(가스통 바슐라르).”란 말처럼 우리가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라야, 진정한 고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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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걸(작소) 2014-01-13 09:29:29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자꾸 이스터 섬이 떠오르데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외부세계의 진입...여러가지로 제주를 사랑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진정한 고향, 고향인으로서 바라보는 선생님 마음....진정 제주인이십니다.

테울 2014-01-08 20:01:10
역시 강경우 시인님이십니다
서서히 그 필력을 발휘하시는 듯
감사히 읽습니다

하늘 2014-01-08 14:57:35
대단한 내공입니다.
감히 누가 이 글을 평 하리까?
감사드립니다. 눈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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