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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우 칼럼(2)靑馬의 해에 부쳐
강경우 칼럼(2)靑馬의 해에 부쳐
  • 나는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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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4 15:1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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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우 시인
뱀의 허물을 벗은 말(馬)이, 이제 막 첫발을 떼고 출발하였다. 뱀은 심리학자 “융(Jung, Carl Gustav 1875~1961)”의 집단무의식에서처럼 어둠과 마찬가지로 조상 누대로 우리에게 유전된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금도 나는 뱀을 보면 날름거리는 혓바늘이 싫고 꼭, 목을 감아 조일 것만 같은 긴 몸뚱이가 징그럽게 무섭다.

「뱀」/ 너무 길다.

프랑스 시인 “쥘·르나르(Jules Renard 1864~1910)”의『박물지』에 실린 단 한 줄 시이다. 너무 유명한 시편으로 정치성이 짙게 깔린 작품이란 것 모르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이니, 통치권자의 불통이니, 철도민영화가 어떻고, 낡은 메카시즘의 깃발을 휘두르며 종북이 어떻고 하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 해가, 진정 저물었을까만 우리는 살아야 하겠기에 암울한 뱀의 해는 지났고, 새로운 말의 해가 떴다고, 밝은 해가 떴다고 그렇게 생각만이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올해는 갑오년이다. 甲은 오행에서 靑이고, 午는 말을 상징하므로 금년은 靑馬의 해라고들 한다. 쪽빛은 약동을 의미한다. 말을 달리자! 청마를 타고 지평의 드넓은 초원을 한 번 달려보자! 그런 지평을 끝없이 달리며 싸워 이겼다는 武神 치우(蚩尤)와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대대로 이어받았다는 우리가 아닌가.

몇 개월 후면 지방선거를 치르게 된다. 출마의사를 밝힌 이 지방 인사들 거의는 우리가 익히 아는 얼굴들이다. 물론 안다고 하는 것이 겉모습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그들 면면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사람 됨됨이가 어떻다는 것, 대강 짐작은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백락(伯樂)의 심안(心眼)으로 진정한 준마(駿馬)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말이다. 세상살이에서, 어찌 인연을 저버린다는 것이 말 같이 쉬운가. 일가친척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학연, 지연 등을 통해 서로 아는 사이라면, 누가 뭐래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그것은 꼭 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를 통해서 나를 돋보이기 위한, 내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학자연하시는 고매한 분들의 말씀이란 대의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지방발전을 위해서 어쩌고 하시지만, 그런 귀한 말씀은 소수의 어떤 귀에나 들릴까, 나 같이 인연 없는 일반 대중의 귀에는 다 씨나락 까먹는 헛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 선출되었든 하루아침에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도 문제가 되지만, 내 인연이라고, 내 편이라고 구린내가 폴폴 나는 인사인데도 아니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화상도 꼴 볼견이다. 어쨌거나 다가올 6월 4일은 지방선거를 하는 날이다. 적어도 제주는 특별자치를 하는 지방으로서 다른 곳과는 다르다. 특별자치의 수장이므로 소국의 대통령과 다름 아니어서, 그 권한이 막중하다. 올해는 1894년의 갑오경장(甲午更張)처럼 외세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힘으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우리의 의지로 바로 잡아가면서 더 밝은 세계로 약진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다음은 흔히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대목에서 곧잘 인용하게 되는, 당나라 때 문호 한유(韓兪,768~824)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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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有伯樂,然後有千里馬。千里馬常有,而伯樂不常有。故雖有名馬,祇辱於奴隸人之手,騈死於槽櫪之間,不以千里稱也。
세상에는 백락이 있고, 연후에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늘 있다. 그러나 백락은 늘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비록 명마가 있어도, 단지 노복의 손에서 욕이나 당하다가 마구간에서 다른 말과 다름없이 죽는다. 그로써 천리마라는 이름은 없게 되는 것이다.

馬之千里者,一食或盡粟一石。食馬者,不知其能千里而食也。是馬也,雖有千里之能,食不飽,力不足,才美不外見,且欲與常等不可得,安求其能千里也。
천리를 달리는 말은 한 번에 한 섬의 곡식을 먹어치운다. 말을 먹이는 자가 그 능력이 천리마란 것도 모르고 먹인다. 이런 말이, 비록 천리를 달릴 수 있다하더라도 배부르지 않으면 힘이 모자라 재주의 훌륭함이 드러나지 않는다. 구차하게 보통 말과 같고자 하나 될 수도 없다. 이러니 어찌 천리마의 능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策之不以其道,食之不能盡其材,鳴之而不能通其意,執策而臨之曰 天下無良馬。嗚呼!其眞無馬邪, 其眞不識馬也!
채찍질은 그 마땅한 도로써 아니하고, 먹임도 그 재능을 다할 수 없게 하며, 울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채찍을 잡고서 그 말에게 다가가 말하길, 세상에는 좋은 말이 없다. 오호라! 그 참으로 명마가 없는 것인가, 그 참으로 명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한퇴지(韓退之-韓愈)의「雜說」중 (馬說). [번역은 필자]

“천리마는 늘 있다. 그러나 백락은 늘 있지 아니하다.” 당시에 한유가 치자(治者)에게 한 말이지만, 처지를 바꾸어서 선거 때만이라도, 우리 스스로가 한 번, 적어도 한 번은 “백락”이 되어보자는 뜻으로 적은 말이다. 그리하여 거꾸로, 누가 우리에게 한 섬의 곡식을 내 줄 사람인지, 일함에는 그 마땅한 도로써 할 만한 사람인지, 우리가 아프다고 울면 그 뜻을 헤아려줄 사람인지, 적어도 우리 인연 없는 사람들만이라도,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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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伯樂) : 춘추시대의 사람으로 본명은 손양(孫陽)이다. 秦의 목공(穆公)의 신하로서 말을 감정하는 상마가(相馬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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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걸 2014-01-13 22:10:45
외세에 의존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힘으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우리의 의지로 바로 잡아가면서 더 밝은 세계로 약진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정말 그리 되었으면.......서민 경제가 갈수록 힘듭니다. 바짝 얼어붙은 이 경기가 언제 풀릴지.....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미옥 2014-01-05 16:11:31
사람만이 살길입니다. 천리마를 알아 보는 백락만이 살아가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새해 귀감이 되는 좋은 글 앞에서 고개가 숙여집니다. 고맙습니다.^(^..

향호 2014-01-05 01:06:47
눈 크게 뜨고 진정 쓸만 한 인재들을 뽑아야 하겠습니다
인정에 휩쓸렸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 없어야 하겠고요
잘 읽었습니다

태울 2014-01-04 22:26:00
신년을 맞이하는 멋진 글입니다
우리 모두 백락이 되어 진정한 준마를 골라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경우 시인님!

하늘 2014-01-04 16:44:51
새해 벅두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얼굴 사진...진짜 사진을 쓰면 어떨까요, 좀 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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