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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우 칼럼(1)나이를 잊었을까만
강경우 칼럼(1)나이를 잊었을까만
  • 나는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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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02 10:43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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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중심 영주일보에서는 ‘강경우 칼럼’ 「돌과 바람, 그리고」를 연재합니다.
강경우님은 1946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했으며 한 시를 전문으로 쓰는 시인입니다.
'다시올' 출판사에서 펴낸 강경우 시인의 '잠시 앉았다 가는 길'은 다시올 시인선 10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강경우시인이 써 내려가는「돌과 바람, 그리고」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필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註]

▲ 강경우 시인
1)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때 나는 막 이순(耳順)의 문턱에 다다른 몸이었지만 나이를 모르고 살았다. 엊그제 어떤 양반(50대)도 술자리에서 누가 자신의 나이를 물어오면 얼른 생각을 못해 생년으로 대답한다고 하였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나 또한 갓 50 때에는 호구지책으로 한 1년 피시방을 운영(망했지만)하였고, 홀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살고 있을 때라 정신이 없었다고 하면 말이 될지 모르겠다. 그런가,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남자들의 오십 안팎이면 아이들 앞길 생각으로 돈 쓸 일도 많고 일에 지치고 바쁘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한 것은 차림새로, 또는 생각만으로도 젊게도, 늙게도 보이는 어정쩡한 나이가 아닌가. 막바지에 이른 수컷들의 생각이란 오직 그것뿐이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때뿐이었다. 피시방을 운영하던 때를 전후하여 이전 10여년, 이후 한 10년 해서 근 20여년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으므로 나는 나이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누구를 만날 일도, 누구를 찾을 일도 없었다. 가끔 농번기에나 동생네 과수원에 나가서는 밀감 수확이나 도와주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네가 하우스 비닐을 갈아 씌운다고 손 하나라도 아쉽다며 도와달라기에 지붕에 올라가게 된 것이 잘못이었다. 지붕 위에 서보니 뛰어내리고 싶었다. 높은 나뭇가지에 오르던 시절이 엊그제 같았다. 위태하게 높은 자리에 설수록 묘한 느낌이 들면서 신나게 날고 싶다는 충동, 아이 때 마음이었다. 비닐하우스 전체 높이 4미터 50센티에서 트러스 높이 1미터 50을 빼면 기둥 끝 발판까지는 고작 3미터 높이이다. 하긴 건물 한층 높이가 3미터 안팎이므로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으나, 군 시절이나 젊어 한 때는 마음만 먹으면 뛰어내리던 높이이다. “李箱의 날개”가 그랬을까만 하여튼 뛰었다. 아! 하니 그것뿐,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가끔 하는 짓이 엉뚱해서 주위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제 분수를 잊었는지, 아니면 젊은 일꾼들 앞에서 객기를 부리고 싶어서인지, 가볍게 뛰어내린다는 것이 그만 허리가 압착골절이 되고 말았다.

2)

X레이 사진을 보면서 새삼스러운 것은, 마치 두루미 목 같이 길게 늘어선 뼛조각 모음이, 지금까지 내 몸을 지탱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찍힌 흑백 필름을 보면 시커먼 하늘에 똥구름 두어 조각과 등뼈의 비행운 한 줄이었다. 뼈가 온전하게 제 역할을 하자면 심줄과 힘살, 그리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상대적으로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이 감싸고 있을 때 안전하다. 자동차 바퀴가 쇠로 만든 휠 바깥에 공기주머니로 감싸듯 딱딱한 것 위에 부드러운 무엇으로 감싼 것, 새의 둥지가 그러하고, 어머니의 자궁이 그러하고, 여성이 그러하지 않던가. 강한 남성의 세계를 부드러운 여성의 세계가 감싸 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하다. 그러니 옛사람도 외유내강(外柔內剛)을 삶의 지혜로 강조하지 않던가. 부드러움이란 물과 같다. 쇠를 벼리고 강하게 또는 여리게 하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칼을 만들고 칼날을 세우는 것도 물이며,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도 물이다. 역설적으로 물은 쇠보다 더 강하다. 물이란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 몸의 78%가 물이므로 물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그러니 나무도 물이 귀한 겨울이면, 어떤 나무는 잎을 버리는 것이며, 어떤 나무는 죽은 듯이 숨죽여 겨울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찍이 “노인”도 최선의 선(善)은 물과 같다며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다. 삼라만상의 생장수장(生長收藏)이란 낳았으면 기르고, 거두었으면 갈무리하듯 춘하추동의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보면, 내 뼈와 살도 나 모르게 춘하추동을 살고 있었음이다. 그리하여 내 몸은 가을, 그것도 속살 없는 수세미가 겨울을 향해 굳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움직였다고는 하나 육십년 넘도록 써먹은 기계라면 가만 두어도 녹슬 것인데 오죽하랴 싶기도 하였다.

3)

늙음이란 마음도 같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 같아야 하는데 우리는 가끔 나이를 잊고, 제 몸이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가만 누워서 생각해보니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일에 주저앉게 되어 엉덩방아라도 찧었다면 솜 같은 대퇴골이 어찌 되었을까 싶다. 돌아누울 수도 없어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려웠다. 싱거운 이야기이지만 먹고 싸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몸이 불편하고서야 알았다. 머피의 법칙, 왜 하필이면 허리인가. 다리가 부러졌다면 그래도 좀 낳지 않았을까 싶은, 나의 그 엉뚱한 망상이 고개를 들기도 하였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 혼자, 하루 종일 누워서 뒤돌아볼 때, 역시 그리운 것은 사람이었다. 평생을 혼자 산 것도, 스승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나의 인생을 가르쳐준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누가 어디서 비슷한 취지로 쓴 말을, 읽은 것 같지만, 나 또한 같은 생각으로

연필과 종이는 내 몸이었고 經典은 온 세상이었다.
나는 나를 가르쳤고, 나는
내게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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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걸 2014-01-03 20:21:39
선생님 부드럽게 읽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은 물입니다. 물처럼 다루어야 함을, 모르겠습니다. 거저 그렇게 느꼈습니다. 일의 산더미에 쌓여 살아도 온갖 스트레스에 휩싸여도 마음을 물로 물처럼 대하며 살고 싶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거저 마음 한 줄 놓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향호 2014-01-03 16:51:18
나는 나를 가르쳤고,나는 내게서 배웠다/
저는 스스로 나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였습니다
귀한 글 접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화안 2014-01-03 14:35:32
시인님의 시집 '잠시 앉았다 가는 길'을 읽고 깊은 감명이었는데
여기서 칼럼으로 만난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좋은 글과 말씀으로 제주가 훤하게 밝아질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해글 2014-01-03 14:05:09
새의 둥지가 그러하고, 어머니의 자궁이 그러하고, 여성이 그러하지 않던가. 강한 남성의 세계를 부드러운 여성의 세계가 감싸 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하다. 그러니 옛사람도 외유내강(外柔內剛)을 삶의 지혜로 강조하지 않던가. 부드러움이란 물과 같다. 쇠를 벼리고 강하게 또는 여리게 하려면 물이 있어야 한다. 칼을 만들고 칼날을 세우는 것도 물이며, 칼날을 무디게 만드는 것도 물이다.//감사드립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김태운 2014-01-03 13:05:01
외유내강이라는 삶의 지혜, '물은 쇠보다 더 강하다'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글향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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