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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42) 북어
[문상금의 시방목지](42) 북어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10.1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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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말랐다는 것은 수분이 빠져나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바짝 말라비틀어졌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빠져나갈 수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몸통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을 놓아버리고, 채 감겨지지 않는 눈가에 흰 소금기 짠맛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북어
 

문상금
 

바짝
말라비틀어진
몸통과 눈,
아가리 벌리고

건태(乾太)
한 마리

간당간당
매달려있는
허공

더 이상 가슴 피 말라
아릴 수도 없는데

누굴 기다리나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하필이면 북쪽 바다에서 잡혀 북어(北魚)가 되어버린, 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자화상(自畵像)을 본다.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꼬챙이에 꿰어져 있는 북어들을 보며 북어가 북어에게 한 말, 최승호 시인의 시(詩) ‘북어’가 생각나는 날.

북어 미역국 한 솥 팔팔 끓여 먹고 싶다.

시장 좌판에서 잘 마른 통북어 서너 마리 골라, ‘북어 두들겨 패듯’ 이라는 말처럼 팡팡 두들겨 패서, 자근자근 채로 찢어서, 참기름에 볶다가 불린 미역을 한 소쿠리 풀어 넣고, 푹 끓인 북어 미역국을, 빗발치듯 땀 흘리며, 악을 쓰며 먹고 싶다.

‘그래 나는 북어다 나는 북어다 나는 말라비틀어진 북어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몸통과 눈, 아가리 벌린 채, 허공에 간당간당 매달린 북어다, 할 말이 많아도 할 말을 잃은 북어다, 더 이상 가슴 피 말라 아릴 수도 없는 북어다’

‘하루는 죽었다 하루는 살았다하는 북어다, 짠 바닷바람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하는 북어다, 닳고 닳은 나무뿌리 같은 북어다, 반벙어리 같은 북어다, 그래 나는 북어다, 어쩔래?’

하루 종일 누굴 기다리나.

목젖을 타고 심장을 뚫고 뱃속을 타고 종횡무진 관통(貫通)하다, 기어코 몰칵 뱉어내는 한 솥 팔팔 들이킨 뽀얀 국물 같은 이 진한 그리움은!

아아, 내 서러운 그리움은 시장 좌판을 기어서 온다, 문전(門前)에 간당간당 흔들리면서 온다, 방망이로 팡팡 두들겨 패도 온몸에 멍 자국 드리우며 온다, 자근자근 북어채로 찢기면서 온다, 서럽고 서러운 진한 국물로 온다.

기어코 온다, 바짝 말라비틀어진 몸통과 눈, 아가리 벌리고 온다, 아아, 건태(乾太) 한 마리, 지느러미 흔들며 바다를 헤엄쳐, 돌아눕는 내 젊음의 바다, 자화상(自畵像)으로 온다.

너를 만나 슬픔을, 짙푸른 슬픔을 알았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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