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1:23 (금)
[문상금의 시방목지](41) 갈대
[문상금의 시방목지](41) 갈대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10.11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갈대는 생각이 참 많은가 보다, 갸우뚱 갸우뚱 때로 거꾸로 구부러져서도 갸우뚱, 얼굴이 뒤집혀 있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강함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때로 널브러져 여린 것처럼 뒹굴지라도, 구부러진 채로 흔들리고 있는 갈대는, 흔들리기 위해 태어난 본분(本分)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갈대
 

문 상 금
 

내보일 수 없기에
더 소중함을 안다

찬바람 울어대는
성산포로 들어서면

갯바람 한 줄기
달려 나온다

파릇한 제 그림자는
빈 강에도 없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온 몸으로 쓰러진다
 

-제1시집 「겨울나무」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한라산 자락에 연자줏빛 꽃으로 피었다가 백발 할머니의 억센 머리칼로 나부끼는 억새꽃만 있는 줄 알았다. 제주에는 훠이, 훠이, 비어내고 다 비어낸 억새밭만 있는 줄 알았다. 허공을 향해 손짓하고 또 손짓하는 허수아비의 공허함 같은 억새밭을 걸어가노라면 채 털어내지 못한 그리움들이 다닥다닥 따라붙던 그 늦가을의 징그럽도록 아름다운 풍경들.

제주에는 온통 말하지 못하고 안으로 삼켜야만 했던 원통한 한(恨)들이 무더기로 피어나는 억새밭만 있는 줄 알았다.

내가 갈대를 처음 본 것은 1985년 12월 한겨울이었다, 그 해 가을에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1학년, 넷이서 중앙로에 있는 ‘까메라따’ 커피숍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시화전 끝에 어떤 연유에서인지 ‘갈대’ 이야기가 나왔고, 그 갈대를 나는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그 느낌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어릴 적부터 뛰놀았던 억새밭과는 또 다른 그 무엇을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선배 한 분이 ‘그럼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서귀포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위미 지나고 남원 지나고 표선 지나서, 동남에서 내려서, 성산포 일출봉 앞까지 천천히 걸어가 보라’는 것이었다.

‘그럼 거기 갈대밭이 있는 거야?’ ‘갈댄지 뭔지, 흔들리는 무리들을 실컷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게 갈대냐고?’ ‘그래, 흔들리고 구부러지고 짠물에 한 번, 민물에 한 번, 하루 종일 뒤척이는 것들을 실컷 볼 수 있을 거야’

흔들린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다는 의미일까, 구부러졌다는 것은 아직은 꺾이지 않았다는 뜻일까, 뒤척인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 밤새 잠들지 못한다는 것일까, 그리곤 잊어버렸다.

연말을 앞두고 K선배가 연락이 왔다, ‘쓰러지면 쓰러진 대로,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대로 흔들리고 있는 그것들을 보았냐고, 그 보송한 감촉을 느껴 보았냐고’ ‘아니, 아직 가보지 못했는데... 억새나 갈대나, 뭘 비슷비슷하겠지 뭐’ ‘그럼 돌아오는 일요일 아침 아홉시에 서귀포 터미널에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동남으로 간다’ ‘그래, 잘 알았어, 모두 성산포 동남으로 간다, 갈대 보러 간다.’마치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처럼 비장한 목소리로 나는 반복하였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따라붙는 바닷물의 흰 물결들을 바라보며 동(東)으로 동(東)으로, 마침내 동남에서 내려 눈발 휘날리는 바다를 걸어갔다, 아아,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야트막한 언덕 같은 길을 따라 양 옆으로 서걱대는 줄기와 잎과 그 보송한 꽃을 보았다, 바람 따라 거친 흔들림, 손짓들, 몸짓들, 약해 보여도 결코 약하지 않은, 제 스스로 쓰러지고 제 스스로 일어나는 그림자들을 보았다.

모두 말이 없었다,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몇몇은 옷깃을 세우고 호호 손을 불며, 첫 눈 오는 날,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강아지마냥 걷고 뛰고 돌아다녔다, 광치기 해변 한구석 조그만 가게에서 늦은 점심으로 갖가지 바다해물을 다 집어넣고 끓인 해물전골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곤 또 모두들 갈대숲으로 가서 크고 작은 갈대가 되어 보았다, 조용히 울어보기도 하였고 온몸을 흔들어 보기도 하였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안녕’ 하고 인사를 하였다. 갈대도 ‘안녕’ 고개를 까딱하였다, 그리곤 나팔처럼 귓구멍을 활짝 열었다, 겨울바람을 뚫고 사부작거리는 갈대의 귀엣말에 귀 기울였다, ‘구부러질지언정, 절대 부러지지는 마, 이 세상은 별거 아니야, 쓰러지면 또 흔들리며 일어서면 되는 거야’

성산포를 뒤로 동남 어귀 갈대밭에서 일행들 등 너머로 문득 뒤돌아섰을 때, 아아, 일몰(日沒)이 지고 있었다, 그 드넓은 하늘의 늪 같은 진홍(眞紅)이여,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벌겋다 못해 온통 절절한 속울음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서편 하늘은 섬뜩하다 못해 차라리 경건하였다.

영영 그 서럽도록 외로운 갈대밭의 일몰을 잊을 수가 없어서, 이십대, 나는 매해 한겨울이면 동남의 갈대밭을 혼자 찾곤 하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분노하거나, 그 갈대 잎의 거칠고 보송한 감촉들을 만져보고 같이 흔들리면서 나는 쓰러졌다가도 일어서고 또 절망하다가도 씩씩하게 일어섰다.

갈대밭 너머로 어김없이 일몰이 오면 그 핏빛 같은 하늘을 무리지어 날아올라 빙빙 군무를 추던 수많은 철새들 따라 나도 어지러워 쓰러질 때까지 빙빙 제자리를 맴돌곤 하였다. 그리곤 갈대밭에 엎드려 한참을 울곤 하였다.

내가 큰 소리로 울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화염병과 시(詩) 때문이었다. 그 당시, 수업은 대부분 자습으로 대체되었고 교정에서 광양에서 중앙로에서 늘 데모가 발생하였다. 휘발유 냄새 코를 찌르는 화염병을 던지며 지르는 그 불규칙하고 날카로운 아우성 소리들, 욕설들, 병 깨지는 소리들, 아스팔트에 치솟던 불꽃과 검은 연기들 그리고 과격한 언어들이 들어간 참여적인 시(詩)들이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나는 데모도 하지 않았고 참여시도 쓰지 않았고 동아리 방에 틀어박혀 화염병도 만들지 않았지만, 늘 묵묵히 그 불안한 움직임들을 관찰하곤 하였다.

꿈꾸었던 학창시절이 아니었다. 끝내 그런 분위기에 적응할 수 없었던 나는 절망했고 결국 휴학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본질(本質)인 서정시를 위하여 일체 외부의 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를 위하여, 아무도 안 읽어줄지도 모를 서정시를, 그것도 일상에서 만나는 아주 섬세한 감정의 떨림 같은 것, 울림 같은 것, 꽃잎 같은 것, 작은 점 같은 것, 서정의 끝자락 같은 것, 신서정(新抒情)의 시를, 변함없이 35년째, 매일 쓰고 있다.

1992년 등단 무렵, 스물다섯 살, ‘갈대’ 연작시 세 편이 씌어졌다. [글 문상금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