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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신의 벌랑포구]( 31)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 khai*
[김항신의 벌랑포구]( 31)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 khai*
  • 김항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10.04 2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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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시인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 khai*

이종형

불과 두어 달 전에
베트남 중부 빈딘성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한국인 참배객을 태운 버스가 쯔앙탄 학살 위령관을 떠나려는 순간
3킬로를 자전거로 달려와 땀범벅이 된 한 사내가 다급히
버스를 막아서고는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 khai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나도 말 좀 하게 해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엄마, 누나, 할머니, 친척들이 방공호에서 다 죽었어요.
왜 한국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고도 우리 마을에는 안 오
는지 너무 억울해서 왔어요.
우리 마을에는 아직 위령비도 없어요.
여기처럼 위령비라도 있으면 한국인들이 찾아올 텐데
우리 엄마도, 내 누이도, 억울하잖아요.
우리 가족 무덤에도 한국인들이 향香 을 한번 피워주세요.
당신들의 나라가 앗아간 엄마의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부르고  기억해주세요.

쯔엉탄 아랫마을 깟흥사 미룡촌에서 태어난 판 딘 란phan Dinh Lanh
떨리는 목소리로 태어난 지 사흘 만에
호랑이 표식을 단 남한 병사에게 어미 잃은 사연을 얘기하는데
꼬박 오십 년이 걸린 거였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라는 사죄의 말조차 감히 건네지 못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이
처연한 눈물과 탄식으로 가득 차오르는 동안
어떤 이는 제주의 4월을 다시 떠올리고
어떤 이는 맹골수도의 찬 바다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억하며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 khai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카이, 카이, 카이khai, khai, khai
나도 말 좀 하게 해달라고


* 카이(khai)는 베트남어로' 증언하겠다' 혹은 ' 진술하겠다' 라는 뜻이다.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도서출판 삶창 2017.
 

이종형 시인
▲ 이종형 시인 ⓒ뉴스라인제주

<이종형 시인>

1956년 제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제주지역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년 《제주작가 》로 작품 활동 시작
(전) 제주작가협회 회장 역임
(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으로 활동 중.
2018년 5.18 문학상 본상 수여,
 

김항신 시인
▲ 김항신 시인 ⓒ뉴스라인제주

카이, 카이, 카이 khai, khai, khai*

긴 시 한 편 소개할까 합니다.

이종형 선생님, 그리고 선배님 !
'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먹먹한 그리움으로 다가갔던 긴 여정의 시간들에 눈 뗄 새 없이 깊어가는 줄 모르게 시향에 머물던 생각이 아련합니다.
시리도록 아팠던 굴곡진 인생길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시점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베트남 중부 빈딘성이나, 4.3이나 에효 그러게 말입니다.
맹골수도의 찬 바다 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모두가
데칼코마니인 것을 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펜더믹은 뭐라고 진술할까요.

괜찮아질 날 오기는 할지, 상념에 젖어보던 붉은 노을도 기우는데 말입니다.

[글 김항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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