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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40)가을 한라산
[문상금의 시방목지](40)가을 한라산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10.0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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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 시인

‘한라산은 어머니다, 아늑한 품이다, 젖가슴이다, 산짐승과 산새와 잡목들과 꽃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 산을 오르는 사람들, 골짜기마다 소망의 불을 하나씩 지피는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
 

가을 한라산
 

문 상 금
 

산을 오르는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엔
빛나는 큰
보석 하나씩
묻어두었나 보다

알 록 달 록
울 긋 불 긋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부르다
바람에 뒹구르르
구르는 수줍음

저마다 하나씩
가슴에 묻고
산을 내려간다
 

-제2시집 「다들 집으로 간다」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툭, 이름 모를 낙엽 한 장, 발밑에 떨어졌다, 노랗고 빨갛고 그리고 아직 초록빛이 조금 남아있는 선명한 나뭇잎, 사진으로 찍어 확대해보았다, 실핏줄 같은 나뭇잎의 촘촘한 잎맥이 마치 창백한 가슴 사진처럼, 갈비뼈 사진처럼, 진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지인(知人)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 ‘낙엽 한 잎 ~, 툭 ~, 존재 확인 혹은 소멸, 바탕이나 본질로 돌아가는 몸짓!’ ‘그렇게 깊은 뜻이...’ ‘자연 안에 모든 정답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심(無心)한 낙엽은 툭 날아와 시적(詩的) 소재가 되고 삶의 성찰이 되고 엄청난 오브제가 되어 후폭풍처럼 시인의 정수리를 치고 나가 한 편의 시로 태어나곤 한다.

가끔 영실에 간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 때, 천천히 나무 사이를 걷다가, 하늘을 쳐다보면 금방 파란 바닷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영실 위 한라산 자락의 하늘 , 그 파란 하늘이여!

아아, 그 짙은 물결의 바다가, 하늘과 한 몸이었다니.

가을 한라산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닮았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는 날이면 한라산의 나무들은 붉게 물들어 왼쪽으로 누웠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산을 오르는 날이면 또 나무들은 노랗게 물들어 오른쪽으로 누웠다. 자리를 바꾸어 돌아누울 때마다 한라산은 더 높고 깊어졌다.

빨갛고 노란 나무들 그리고 빨갛고 노란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애타게 부르다 뒹구르르 구르는 한라산엔 울긋불긋, 알록달록, 한 폭의 풍경화가 태어난다.

가을 한라산엔 빛깔과 소리가 있다, 그것들은 거칠고 바스락거린다, 밟으면 곧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촘촘한 그물처럼 실핏줄처럼 얽히고설킨 그리움 하나.

가을 한라산엔 보석이 있다, 보석들의 광채가 한가득하다, 별무리 한바탕 쏟아지던 밤에 선물처럼 내려온 붉고 푸른 기운들이 운집한 보석들.

산을 올랐다 내려오는 사람들은 그 무언가 더 높아지고 깊어진 보석들을 하나씩 가슴에 품고 산을 내려온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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