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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포토에세이](23) 보성리 붕우릇
[양순진의 포토에세이](23) 보성리 붕우릇
  • 양순진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1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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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 시인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어느덧 구월이다. 태풍 찬투도 지나고 추석을 앞둔 토요일 밤이다. 서편 하늘에 달과 별이 나란히 깜박이고 귀뚜라미 소리 애닯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서귀포에서 서쪽으로 가는 일이 잦아졌다. 한마디로 제주도라는 섬 안에서 동서남북 빙글빙글. 자유를 좋아하던 성격이 직업까지 연결될 줄이야.

그러나 운명이라면 즐겨라.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얻는 게 많다. 누구나 힘든 코로나를 나만의 방법으로 견뎌내고 있고, 세상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중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다가 세상의 베일을 벗기는 연습도 하고 있다.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그 중에 살아오면서 내가 닿지 못하던 제주의 구석진 곳을 발견하는 일이 가장 흥미진진하고 의미롭다. 지난 주에도 그랬다. 창천에서 무릉으로 향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 산방산 뒤쪽 덕수리 마을 속으로 진입했던 일!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웅장하고 굴곡진 산방산 뒷 모습과 돌담 위에 늘어진 조롱박과 진주황색으로 소담스레 피어 있는 넓은잎유홍초를 만났다. 생각지 않는 곳에서 생각지 않던 풍경을 만난다는 건 가슴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다.

그리고 보성리 마을을 지나치다가 저수지 같은 연못이 눈에 띄어 무조건 차를 세웠다. 그냥 지나쳐버렸다면 두 번 다시는 그곳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 신비한 풍경을 마음에 담아오지 못 했을 것이다. 그곳은 바로 '보성리 붕우릇'이라 불리는 생소한 소공원이다.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의 유래는 이랬다. 고려 충렬왕 때 보성리를 중심으로 동서 도현을 설치했고, 조선 태종 때는 이곳에 대정현을 설치하여 대정고을로 정했다고 한다. 선조 중엽에는 서성리와 동성리로 불리다가 고종 2년(1864년) 동성리는 인성리와 안성리로 분리되고, 고종 24년(1887년)에 서성리는 보성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붕우릇(봉우릇)은 메말랐다가 비가 내린 다음에는 못(池)이 가득  찬다는 데서 '봉우수(逢雨水)'라 불리웠는데 근래에는 붕우릇 물이라 부른다. 이곳은 예부터 농업용과 식수, 빨래와 목욕을 해오던 조상들의 얼과 추억이 깃든 유서 깊은 연못이다. 그토록 의미 있는 곳을 별도로 조성하여 1989년 확장  보수, 1999년 재보수 공사, 2006년 소공원으로 조성하여 지금에 이른다. 수심은 5m로 잉어, 붕어, 미꾸라지, 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청둥오리, 백로들이 잠시 노닐다 간다.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2009년 김경덕 기자의 기록을 보면 송이고랭이, 부들, 기장대풀, 한련초, 골풀, 자귀풀, 여뀌 등의 식물이 분포되어 있고, 동물에는 물매암이, 소금쟁이, 참개구리, 황소개구리, 붕어, 쇠백로, 왜가리 등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가끔 낚시도 한다니 정말 낭만적인 모습이 상상된다.

정확히 2021년 9월 8일 수요일, 붕우릇 공원에서 내가 본 것은 이것들이다. 보성리라고 쓰여진 돌, 두 분의 돌하르방, 귤 모양의 포토죤, 귤 모양의 테이블과 의자, 정자, 보성리 붕우릇 해설석, 대정감귤 탑푸르트 광고판, 운동기구, 나무 의자들, 정자, 연못 가운데 섬, 보리수, 벚나무, 연못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아왜나무 군락, 소리쟁이, 황금측백 군락, 으아리, 연못 너머 보이는 한라산과 산방산과 단산, 그리고 오른편으로 보이는 모슬봉. 이 연못은 그 모든 명산들의 가운데 있다.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가던 길 멈추고 아주 짧은 순간 내가 목격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운치 있는 곳인가. 다양한 나무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가장 호기심 있는 것은 연못 가운데 있는 돌섬이다. 조각배라도 있다면 노 젓고 가보고 싶은 신비한 작은 섬. 그곳엔 무엇이 있는지 그 어느 곳에도 기록은 없어 아쉬웠다.
주변에서 도로 확장인지, 붕우릇 개선 공사인지 한창이었다. 더 멋진 모습으로 단장될지도 모르겠다.

대정읍의 심장부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보성리 붕우릇에서 내 인생의 낮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때로 역경은 사람의 내면을 더 단단하게 조성한다. 저 연못의 세월처럼. 코로나로 혼란스런 시간도 묵묵히 흘러갈 수 있다면 이 방랑 또한 장한철의 '표해록'처럼 코로나 극복록이 될 지도 모르겠다. [글 양순진 시인]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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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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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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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보성리 붕우릇
▲ 보성리 붕우릇 ⓒ뉴스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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