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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25)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
[자청비](25)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
  • 이을순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16 08: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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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순 소설가
이을순 소설가
▲ 이을순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지난달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다가 그만 내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중병을 앓고 있는 50대 아버지를 간호하다 회복할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굶겨 죽인 20대 아들에게 존속살해 혐의로 4년의 징역형이 선고되었다는 기사였다. 아버지는 지주막하출혈 등 증세로 7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웠는지 병원비는 아버지의 동생이 충당했고, 더는 병원비를 낼 수 없게 되자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었다. 병원에선 지금 퇴원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렸지만, 병원비를 마련하지 못했던 아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퇴원 당시 아버지는 왼쪽 팔다리가 마비돼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코에 삽입한 호스를 통해 위장으로 음식물을 공급하는 ‘경관 급식’ 형태로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2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야 했고, 폐렴으로 인한 호흡 곤란을 막기 위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위중한 환자인 아버지. 이런 상황에서 아들은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어차피 죽을 아버지가 사망하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그래서 8일간 병원에서 지시한 처방도, 음식물도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들은 그것을 외면해버렸다.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 아들이 방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들에게 더 이상 물이나 밥을 달라고 하지 않았고, 마침내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이 발병해 사망했다.

이런 기사를 읽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오는 법이지만 그 끝이 너무나 비참해서 그 죽은 자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처참한 죽음을 마주한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기를 버린 아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아마도 용서하고 떠났으리라.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슬픈 눈물은 가슴에서 넘쳐 강물을 이루었으리라. 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낸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비록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지만 꼭 그런 방식으로 아버지를 버려야만 했을까. 하루라도 빨리 죽어주는 게 자기를 위한 일이라지만 그래도 아들이지 않은가. 어렸을 때 분명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귀여움도 받으면서 자랐을 것이고 또 작은 도움이라도 받고 자랐을 터. 한데 늙고 병든 아버지를 퇴원해서 겨우 하루만 간병한 후 그대로 짐짝 버리듯 매정하게 버리고 말았다. 만약 아버지에게 연민이라도 있었더라면 동네 주민센터에 찾아가 상담이라도 해봤으리라.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잘 찾지 않던가. 그러면 ‘돌봄SOS센터’ 서비스도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터. 복지 사각지대 위기 가구라는 걸 확인하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을. 하지만 아들은 어떤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아버지를 버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점점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눈에는 죽을 날이 다가온 송장처럼 보일 것이다. 납덩어리처럼 파리하여 둔하고 느리고 비틀거리는 위태로운 삶의 몸짓처럼 말이다. 차라리 빨리 죽어주는 게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을지도 모른다. 노인들의 마음이야 살 만큼 살다가 적당히 앓다가 한방에 콱 죽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기에 노인의 삶이 그 얼마나 고독하고 슬픈가 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고독사로 죽어가는 노인들도 많을 것이다. 요즘 세상살이가 더 각박하다 보니 자식들마저 부모들을 돌보지 않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덧 나도 노년으로 접어들다 보니 병원을 드나드는 횟수도 잦아지고 있다. 침샘에서 농이 나온다는 치과의사의 진료의뢰서를 받고 제주대학병원이 아닌,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게 되었다. 딸네 아파트가 근처에 있기에 그쪽에서 진료를 받는 게 편하고 좋을 듯싶어서였다. 그렇게 진료를 받던 중 하루는 딸이 물었다. “엄마는 죽으면 매장을 할까, 화장할까? 제사는 어떻게 할까? 오빠랑 얘기했는데 우린 아빠 엄마 살아 있을 때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리고, 대신 제사 같은 건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엄마 생각은 어때?” 순간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평소 내가 생각해 두었던 것들을 말해주었다.

노년의 참된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누구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자기의 의지대로 살다가 떠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며 노년의 삶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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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2021-09-16 16:12:27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중요함을 느낍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죽음의 순간은 서로 다른 환경을 갖고있어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이제 웰다잉을 꿈꾸는 시대가 되었네요.
의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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