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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24) 바리메, 그 환한 수국꽃 길
[자청비](24) 바리메, 그 환한 수국꽃 길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09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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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퇴직 후 여섯이 일주일에 한 번 오름을 오르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그동안 꽤 많은 오름을 만났다. K대장님은 오름을 사전 답사하고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다. 사진기술이 뛰어나고, 온갖 식물, 꽃 이름까지 잘 아는 J는 자연스럽게 사진과 기록담당이 되었다. 그녀는 다녀온 오름에 대하여 다양한 사진과 함께 소상한 글을 밴드에 남긴다. 밴드에는 그동안 다녀온 오름에 대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대장님은 많은 오름 중에서도 특히 바리메를 사랑하는 바리메 홍보대사.

바리메의 전망이 최고라.”

바리메의 정기를 받으면 아픈 것도 다 낫는다니까.”

바리메 입구에서 찍은 물그림자 사진은 어디 외국 저리 가라 할 정도라~.”

그가 바리메 자랑을 할 때마다 전에 몇 번 다녀왔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다지 매력 있는 오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리메 물그림자 사진을 본 후로는 그곳을 꼭 가보고 싶었다.

대장님이 자랑하는 바리메와 그 둘레길을 가보는 날이 왔다. 둘레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오늘은 모두가 상기된 모습이다. 바리메 둘레길은 대장님이 오름 매니저를 하면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전 답사를 했다고 한다.

바리메 주차장 가기 전 물그림자 사진을 찍는 곳에 들러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철조망이 발길을 막는다. 많은 사람이 들락거려서 진드기병이 걱정되었나 보다. 멀리서 물에 비친 주변 경치의 모습을 고개 넘어 보려고 해도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장님은 안내판을 보며 설명을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몇 번을 다녀도 바리메에 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느꼈다. 그저 바삐 오르고 정상에서 시원히 보이는 사방 전경을 보고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다.

바리메는 어음리 산1번지 일대에 있다. 표고 763, 비고 213. 표고와 비고에 대하여도 대장님은 보충 설명을 한다. 표고는 기준점(보통 해수면)에서부터의 높이를 말하고, 비고는 출발하는 지점에서부터 정상까지의 높이라고 강조한다. 오름 매니저를 통해 제대로 배우고 있다.

바리메라는 이름은 정상 분화구가 마치 절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밥그릇(바리)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단순히 분화구 모양만을 생각해서 이름을 지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있다. 바리메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더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스님이 먹을 것을 얻어다가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거나, 바리데기 전설과 연관을 짓거나 하면 재미있겠다는 상상을 하며 정상을 향했다.

20여 분을 올라갔을까, 분화구 둘레길에 다다르니 양쪽으로 길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한 바퀴를 돌아오게 되었다. 왼쪽으로 돌아 걷다 보니 둘레길 남쪽 언저리까지 왔는데 시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상쾌하고 시원함이 밀려든다. 한라산 서북 벽이 웅장한 모습으로 근육을 자랑하고 있다. 그 불끈한 기운이 나에게도 전달되는 느낌이다. 이래서 대장님은 바리메의 정기를 받으면 아픈 것도 낫는다고 장담을 했을까. 동쪽으로는 노꼬메 오름이 말굽형의 모양으로 우뚝 서 있다. 오름에서 오름을 봐야 그 오름의 외형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저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군모를 엎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린 왕자에 나오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같기도 하다. 그 뒤로 보이는 가파도는 납작한 나무판을 바다에 띄워놓은 듯하다.

오래전 산방산 꼭대기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맨 꼭대기에서 사계 바다의 풍광을 한 눈에 내려다 보며 잠시 신선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 후 다시 한번 오르려고 하니 통제가 되고 있어서 못 갔다. 가파도는 청보리가 파르르 피어날 때 갯 냄새에 취하며 바닷가를 한 바퀴 돌았었지.

바리메에 오르면 이처럼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곳을 보여주니 바리메의 매력이 더해졌다. 북쪽으로 돌아오면 바다와 마을이 어우러진 경관을 만나게 된다. 봉긋 봉긋한 오름들도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한다. 어도봉, 과오름, 고내봉, 수산봉, 이름을 불러본다. 내가 애월사람이라서 그 이름들이 동네 친구 이름처럼 정겹다.

오름에게 인사하는 법은 오름을 찾아가서 오름의 품에 안기는 것인데, 오름끼리는 그저 그 자리에서 서로의 텔레파시로 인사를 하겠지.

시야에 들어오는 주변 경치에 매료되어 걷다보니 분화구 둘레 826미터가 짧게 느껴졌다. 내려오는 길은 인생 내리막길처럼 조심 조심이다.

무사히 내려왔으니 두 번째 목표 바리메 둘레길 탐방 순서다. 주차장보다 500미터쯤 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오래전 임도로 사용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아무도 다니지 않아서 풀이 웃자라서 길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다. ‘정글 숲을 헤치며 가자노랫말처럼 앞을 가리는 풀들을 헤치며 걸었다. 탐험하는 기분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자부심으로 전진 전진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환희의 순간을 만났다. 보랏빛 산수국이 길 가득 우리를 맞는다.

어머나, 예쁘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요.”

이 둘레길 빨리 개통해야겠어요. 이 아름다운 수국을 다른 사람들도 보게요.”

우리 인생에도 꽃길이 이어지지 않듯이 다시 덤불 숲길이다. 그래도 수국꽃이 반겨주고 환영해준 기쁨으로 바리메 둘레길 탐방은 대만족이었다. 길이 있어도 못 가는 일도 있고, 길을 몰라 못 가는 일도 있다. 바리메 둘레길은 길이 있어도 못 갔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는 이가 많아지면 바리메 둘레길은 명소가 될 것이다. 언제가 바리메 둘레길이 개통되면, 그 환한 수국 꽃길을 다시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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