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9-20 08:10 (월)
[김항신의 벌랑포구](27) 흰죽
[김항신의 벌랑포구](27) 흰죽
  • 김항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06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영민 시인

흰죽

고영민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
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
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

말갛게 밥물이 퍼진,
간장 한 종지를 곁들여 내온
흰죽 한 그릇

늙은 어머니가 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가스레인지 앞에 오래 서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부어 저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물을 부어주는,
좀 더 퍼지게 할까
쌀알이 투명해졌으니 이제 그만 불을 끌까
오직 그런 생각만 하면서
죽만 내려다보며
죽만 생각하며 끓인

호로록,
숟가락 끝으로 간장을 떠 죽 위에 쓰윽,
그림을 그리며 먹는

       《사슴공원에서》창비. 2012
 

고영민 시인
▲ 고영민 시인 ⓒ뉴스라인제주

<고영민 시인>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 <봄의 정치>
박재삼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

 

김항신 시인
▲ 김항신 시인 ⓒ뉴스라인제주

가끔은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모님
생각에, 핏덩이 아가를 낳고 한 양푼이나 너무너무 맛있게 먹던 새내기 어미였던 때, 그때는 미역국 보다 맨 흰 죽이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아픈 딸을 위해
아픈 아버지를 위해
후후 불며 한 입 먹이던 순간들

먹먹하고 시린 날이면 후루룩 흰 죽 한 사발 아련하게 하는 시간

훈훈하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지납니다.


        [ 글, 김항신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발행일 : 2011-09-22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1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