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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신의 벌랑포구](27) 흰죽
[김항신의 벌랑포구](27) 흰죽
  • 김항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0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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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 시인

흰죽

고영민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
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
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

말갛게 밥물이 퍼진,
간장 한 종지를 곁들여 내온
흰죽 한 그릇

늙은 어머니가 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가스레인지 앞에 오래 서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부어 저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물을 부어주는,
좀 더 퍼지게 할까
쌀알이 투명해졌으니 이제 그만 불을 끌까
오직 그런 생각만 하면서
죽만 내려다보며
죽만 생각하며 끓인

호로록,
숟가락 끝으로 간장을 떠 죽 위에 쓰윽,
그림을 그리며 먹는

       《사슴공원에서》창비. 2012
 

고영민 시인
▲ 고영민 시인 ⓒ뉴스라인제주

<고영민 시인>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악어> <공손한 손> <사슴공원에서> <구구> <봄의 정치>
박재삼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등 수상

 

김항신 시인
▲ 김항신 시인 ⓒ뉴스라인제주

가끔은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부모님
생각에, 핏덩이 아가를 낳고 한 양푼이나 너무너무 맛있게 먹던 새내기 어미였던 때, 그때는 미역국 보다 맨 흰 죽이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아픈 딸을 위해
아픈 아버지를 위해
후후 불며 한 입 먹이던 순간들

먹먹하고 시린 날이면 후루룩 흰 죽 한 사발 아련하게 하는 시간

훈훈하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지납니다.


        [ 글, 김항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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