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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35) 편지
[문상금의 시방목지](35) 편지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8.30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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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 시인

‘편지란, 마음이나 말의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오감을 종이에 글씨로 써내려간 일기이다, 낙서이다, 점 하나만 찍어 보내도, 여백 그대로 보내도, 환히 알 수 있는 모래밭 물새 발자국 같은 총총 선명한 흔적들’
 

편지
 

문 상 금
 

‘더럽고 힘든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지만
나는 행복하다네’

동생 테오에게 보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편지 한 구절을 읽는다

아마도
그가 원했던 것은
바로 소통(疏通)이었을 것이다

불안스레 흐릿한
하늘 아래로 펼쳐져 있는 거대한 밀밭,
까마귀 같은, 해바라기 같은,
발작 같은, 그런

‘항상 네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네게 자주 편지를 쓰는 게 놀라울 것이 없다’

소통(疏通)도 안 되는 서귀포에서
나는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내 절망의 바다 같은
시를 쓰며 살아간다
하얗게 웃으며 살아간다

파도처럼
파도처럼
 

-제3시집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있기 때문이다」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매일 대문 안으로 던져지는 흰 봉투의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다, 한동안, 보내는 사람의 이름도 주소도 없는 그런 불투명한 편지를 나는 본능적으로 열어보지 않는다.

그 때만 해도 옛날이었다, 안개 짙은 이 불통의 소도시 서귀포에서, 간절한 소통을 원하는, 그 누군가가 있었던 것일까, 하나둘 쌓이는 편지들, 설운애기 같은 울음들이 한바탕 모여 있을 것 같은 그것들을 끝내 앞마당 담 밑에서 태워버렸다, 편지는, 그 실 한 올 같은 소통을 원했던 여백과 글씨들은 흰 연기가 되어 멀리멀리 흩어졌다.

그 누군가는 편지를 쓰는 동안 많은 기대를 가졌을까, 이름도 없이 툭 대문 안으로 던져놓으면서, 조금은 설레었을까, 나도 소통을 간절히 원하며 흰 파도처럼 하얗게 웃으며 살았지만 주소불명의 편지는 원하지 않았다.

친구 몇몇과 후배들이 보내온 편지들은 전부 보관해두었다, 그 중에 중동에 간호사로 파견 나갔던 친구는 매일 병원일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와 휘갈긴 글씨체로 파피루스 종이에 서너 장 빼곡하게 적어 보내오곤 했다, 낯선 나라에서의 그 견뎠던 힘들고 외로움의 시간들을, 때로 눈물자국 콧물자국 얼룩이 선명하게 번져있기도 하였다.

서귀포여고 후배였던 K는 ‘별밭’ 문예반 동아리를 같이 하였고 시를 습작하고 책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간혹 전화가 오면 커피도 마시고 서귀포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을 걷기도 하였다, 잊을만하면 장문의 편지를 보내오곤 하였다, K는 성실한 중고등부 국어교사가 되었고, 꾸준히 모교인 서귀포여고에 매해 일백만원씩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편지는 가장 진솔한 표현이다,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소통이다, 모든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의 찌꺼기들이 일시에 정화되고 재탄생되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수많은 편지들을 보냈다, 더럽고 힘든 그림을 그리고,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갇혀서 매일 그 정신병원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별들을 그리고, 그 별빛들과 교감하며 끊임없이 편지를 쓰곤 하였다.

아마도 고흐가 원한 것은 소통이었을 것이다, 불안스레 흐릿한 하늘 아래 발작 같은, 그런 고립된 외로움이 아니라, 반짝반짝 빛나는 그 별빛들이 쏟아져 내리는 강물 위의 평화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고흐의 그림을 아주 좋아한다, 그 조금은 광적(狂的)인 듯한, 소용돌이의 하늘이며 별빛이며 밤 강물이며 식물들의 줄기와 잎과 꽃을 아주 좋아한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것은 엄청나고 강렬한 힘을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고흐는 매일 그림을 그렸다, 매일 그림 한 점씩을 완성하기도 하였다, 물감도 아끼지 않았다, 물감 살 돈이 부족하다고 언급한 부분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고흐는 그림에 중독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림이 없는 삶,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면 마치 자신이 존재할 의미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 그림에 갇혀서 미칠 듯이 그렸던 것이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완성된 2천여 점의 고흐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 간 정신병의 고통을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수많은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년 작품)등의 대표작이 있는데, 나는 이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또 우연히 내가 습작기부터 지금까지 쓴 천여 편의 시(詩)중에서 ‘나의 별’ 이나‘ 따뜻한 별’ ‘푸른 별’ 등 ‘별’을 소재로 한 시작품들이나 ‘별’이란 명사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나도 유독 ‘별’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기획전시 ‘빈센트 반 고흐, 향기를 만나다 展’을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레플리카 작품 70여 점, 3D 복원작품 2점 전시와 체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회를 다 돌아보고 나설 때, 하늘은 마치 거대한 밀밭을 덮은 양떼처럼 흰 구름들이 떠 있었고, 까마귀 한 마리 까옥까옥 날아올랐다. 마치 이 위대하고도 불행한 화가의 절규를, 광기(狂氣)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끝내 귀를 자르고 나서, 더 그림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고흐처럼, 무엇을 자르고 나면 나는 더 시(詩)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인가.[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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