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9:03 (화)
[자청비](23) 일만 시간 법칙의 배신
[자청비](23) 일만 시간 법칙의 배신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8.0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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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무더위 탓인지 글은 써지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다. 소설 원고 마감 날짜도 지났는데 구상했던 원고는 초고도 쓰지 못했고 썼던 원고 중에 퇴고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 일만 시간 법칙이 생각났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을 믿고 꾸역꾸역 글을 써와서 소설가라는 명칭은 달았지만 어떤 지점에 도달해보니 정체된 느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전에 썼던 작품을 복제하는 듯한 기시감에 경악한 적도 있었다. 흐르지 않고 고여있어 썩는 물처럼 내가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요즘 도쿄 올림픽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빙판에 도끼가 쩍 찍히는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황선우의 빠른 팔 젓기와 펜싱 팀의 ‘발펜싱’에 대한 기사였다. 불리한 체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황선우는 빠른 팔 젓기를 하는데 이것은 금메달을 딴 수영선수보다 약 10회 정도 많은 것이라 한다. 발펜싱은 외국 선수들이 키가 큰 대신 하체가 약해 손동작이 중심인 것에 착안해서 발의 스텝을 빠르게 하는 것이다. 외국 선수들이 한 번의 발 스텝을 할 때 우리나라 선수는 두, 세 번의 발 스텝을 하여 세계 최강이 되었다.

분명 일만 시간의 법칙처럼 어떤 일을 하는데 시간을 투자한 만큼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실력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게 되면 더 나아지지 않고 정체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이 시도해보지 않은 과감한 방법을 끌고 와 그것을 체화하려면 처음엔 실패도 있을 수 있고 낙담할 수도 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해 나가면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에 더 가까이 가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을 진전시켜 보다가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건 처음에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나! 십 년 전 무수히 공모전에 떨어질 때마다 실패 하나 하나가 위로 올라가는 디딤돌이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글쓰기를 즐기던 시절의 마음가짐이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안주해 있었던 것뿐이다. 이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나를 더 담금질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을 두려워했고 스스로 만족해버렸다.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한층 업그레이드된 내가 돼야겠다. 나의 단점을 파악하고 강점은 돋우면서 다시 일만 시간의 법칙을 믿어보기로 한다. 다시 십 년 후에 일만 시간의 법칙이 나를 배신했다고 느끼게 될 때면 이제 도약하기 위해 아파야 할 시간이라는 걸 지금보다는 더 빨리 파악하게 될 것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든 못 땄든 묵묵히 훈련을 거듭하고 땀 흘린 모든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이 시간에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자신을 믿고 담금질하는 모든 사람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그대, 잘하고 있어요. 일만 시간 뒤에 다시 아프더라도 그게 성장통이란 걸 믿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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