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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29) 칸나
[문상금의 시방목지](29) 칸나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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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는 닭의 벼슬이다, 뿔도 되지 못한, 닭의 벼슬은 고고(高高)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또 하나의 처절한 분신이라서, 뼈가 시리도록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 피고 피다 그래도 인정(人情)에 허기지면 일말의 여지도 없이 툭 저버릴 것, 가장 절정에서 추락하는, 저기 저 붉은 눈부심을 보라’

칸나

문상금

심장에서 뜨거운
용암 같은 것이 쏟아져

삐죽삐죽
푸드득

닭 벼슬 그 빨갛고
안정감 있는
착지(着地)

무엇이
그리 그리워서

여름,
화사한
긴 그림자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화전민처럼 떠돌며 감귤묘목을 키우다가 드디어 첫 번째 밭 칠 천 평을 마련하여 탱자 씨를 뿌려 싹이 돋아났다고, 보송하다고, 그 밭에 농가를 짓는다고 기별이 왔다, 모두들 기뻐하여, 나도 덩달아 기뻐하여, 아윤 선생은 이 참에 토신제도 지내고 상량식도 멋들어지게 하라고 부추겼다, 2010년 하늘 푸르던 11월에, 여기서 부추겼다고 하는 것은 아주 기쁜 나머지, 앞으로 줄줄이 발전하여 큰 밭 작은 밭 많이 마련하여 실컷 묘목 농사를 지으라는 의미이다.

‘문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다’,내가 서귀포문인협회 회장할 때, 매 행사 때마다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일과가 끝나면 매일 밤 모여들었다, 토론하고 갑론을박 싸우고 이제 더 이상 안 볼 것처럼 얼굴 붉히며 등 돌렸지만 미처 하루가 지나지 못하고 다시 모여들었던 사람들, 이미 시인도 있었고 장차 시인이 되려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서넛은 삼십여 년이 넘도록, 한결같은 좋은 인연으로 성장하였다, 수많은 희로애락을 그리고 아주 사적인 부분까지도 서로 용서하고 포용하였으니, 문학이라는 혈연으로 단단히 뿌리내린 이것은 가족보다 더 진한 인연이 아니었던가.

토신제와 상량식 준비로 하루 이틀 분주해졌다, 나는 상량식에 쓴다고 벼슬 좋은 수탉을 한 마리 알아보라고 해서 오일장으로 달려가 힘 좋은 수탉 한 마리를 골랐고, 아윤 선생은 토신제에 쓸 작은 병풍과 축문을 준비하였다. 드디어 몇몇은 신흥리 탱자 묘목 농장에 아침 일찍 도착하였다, ‘육묘장(育苗場)에 들어서면 차마 숨도 못 쉰다.’, 말로만 듣던, 그렇게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탱자묘목 군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수백만 대군의 도열처럼, 마치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듯 칠천 평 반듯한 평지에 빼곡히 돋아난 실핏줄 같은 싹들.

흰 무명천에 발이 묶인 수탉은 시도 때도 없이 삐죽삐죽 푸드득거렸다, 동서남북 방향을 잡고 미리 준비해놓은 제물을 올리고 토신제(土神祭)를 올렸다, 그리고 대목수가 기둥 위를 타고 오르더니만 축원문이 적힌 상량(마룻대)을 올리고, 긴 무명천을 당겨 수탉을 끌어 잡아 올렸다, 미처 아악, 할 사이도 없이 날카로운 작두날에 수탉 목은 단칼에 잘리고 날개와 몸통이 떨어질 때, 마지막 몸부림이었을까, 푸드득거리며 날 듯 말 듯, 내 팔 위로 어깨 위로 사방팔방 뚝뚝 떨어져 내리던 그 뜨겁고 붉은 닭 피여, ‘나쁜 기운들아, 멀리멀리 떠나라.’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피 한 방울의 그 끈적끈적한 온기를 여태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떠나면서 붉은 피 뿌리면서 나쁜 기운들을 전부 몰아갔을까, 괜히 눈물이 날까 싶어 뒤돌아섰는데, 삼나무 담벼락 옆에 늦도록 피어있던 붉디붉은 칸나여.

닭 심장에서 뜨거운 용암 같은 것이 터져 흘러나와 꽃으로 피었는가, 숱하게 피고 지는 칸나 꽃을 볼 때마다 내 심장은 그 뜨겁고 붉은 닭 피의 온기처럼, 긴 그림자 드리우고 늘 화사하게 뛰놀곤 하였다.

해마다 만 평, 만 팔천 평, 연달아 밭을 구입하였고, 그 때마다 농가도 하나씩 지었고, 진짜 잘하였다고, 몇몇은 기뻐서, 시장 통으로 또 우르르 모여들어 고등어회나 객주리회의 그 담백한 육질을 질근질근 씹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초심(初心)을 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나도 그 틈에서 덩달아 단맛이 배어나는 고등어회의 뱃살을 감칠 맛나게 씹어주었다.

반평생 고단한 생(生)의 여정에서 몇몇의 소중한 인연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그 고마움을, 시인들의 시작품 몇 편을 표구하고 액자로 만들어 농장 서재에 걸고 싶다는 것이었다, 고이 모신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나에게도 제4시집 「꽃에 미친 女子」에 실린 ‘장미’란 시를 직접 육필로 써달라고 연락이 왔다, 큰 심부름 작은 심부름 많이 해주어서 그런가, 열심히 일 잘한다고 손뼉을 쳐주어서 그런가, 아니면 가끔 일침(一鍼)을 날려주어서 그런가, 내가 장미꽃을 아주 좋아하고, 붉은 옷을 자주 입어서 그런가, 하필이면 그 수많은 시작품 중에 가시 많고 독한 ‘장미’를 골랐는가. ‘혹 다른 시를 고르면 안 되는가요? 보내고 싶은 시를 선(選)하여 글씨를 쓰면 안 되는가요?’ ‘안 된다, 장미를 육필로 써서 보내 달라’, 이쯤 되면 누가 무엇을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붓글씨도 못 쓸 뿐더러 시도 아직 미비하다고 사양하였지만, 몇 번 전화가 와서, 어쩌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소문을 들었는지, 하루는 아윤 선생이 붓과 화선지를 다 준비해 놓았다고 와서 한두 번 연습하고 써보면 된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글씨도 쓰고 집에서 점심도 먹자’ 하셔서, 그 점심에 은근히 구미가 당겨서, 낙관을 들고 보목 자택으로 달려갔더니, 정말 탁자에 화선지를 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글씨가 될까, 조심스레 한두 번 써보니 감이 오기 시작했다, 세 번째에는 일필휘지로 쓰고 낙관을 처음과 말미에 탁탁 찍었더니, 아흔을 바라보는 노부부가 손뼉을 치시며, 참 잘 하였다고, 오히려 눈물 나도록 기뻐하시며 한바탕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명이 잔뜩 얹어진 비빔국수를 차려주셔서, 나는 고추장과 참기름으로 박박 비벼서 두 그릇을 내리 먹었다, 2020년 10월 11일에, 그렇게 내 남루한 시 ‘장미’는 석파 시선재에 다른 몇몇 작품들과 함께 걸리었다. 그것도 또한 고마운 인연인지라, 나도 답례로, ‘석파(石播), 돌밭갈이’란 시를 써주었다.

최근에 몇몇이 모였을 때 또 ‘밭을 사고 싶은데’ 하셨다, 밭을 더 살 정도의 여력이 넘치고 있다는 의미다, ‘만약 다시 태어나신다면, 그 때도 이렇게 평생 일만 하고 살아가실 건가요? ‘아니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아, 절대로, 너무 힘들었어,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이제 밭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좋은 일을 하시면 되겠네요, 이 세상에 왔다 갔다는, 흔적을 깊고 짙게 남기시면 되겠네요.’

시인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이란 다름 아닌, 좋은 시 한 편이다, 그리고 시의 집, 좋은 시집이다, 그리고 개인 문학관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개인 문학관을 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다.

며칠 후에, 아윤 선생한테 전달해 달라며 전화가 왔다, 가로 16.5m , 세로 10.5m, 한 52평 정도, 스케치를 해주면 곧장 설계에 들어간다고 하시며, 이제는 칠만 평 농장 한 켠 꽃밭 옆에 전시관을 정식으로 지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곧장 터파기도 들어갔다고 한다, 시작품 전시관이 될지, 장차 문학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망을 가지고, 소망을 키우고, 그 소망을 이루어 가는 것만큼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문학이란 강한 연결고리 안에서 모두가 한 가족이다, 얼마나 든든한 배경인가, 오순도순 서로의 작품들을 봐주고 오타들을 살펴주고 좋은 작품집을 낼 수 있도록 등 두드려 주어야 한다, 외롭고 때로 절망하여 쓰러지지만 그러나 때로 강한 일침을 가하기도 하고 기뻐해주기도 하고 슬픔을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따뜻한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문학 작업의 완성은 휴머니즘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살아가다보면 치명적인 실수를 할 때도 있고 헛일, 헛짓, 헛길을 갈 때도 있지만, 기회를 주고 또 기회를 주어,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따뜻한 사랑을 끝없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살아가는데 있어서 시작과 종결은 사랑이다, 아니 온통 사랑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시를 사랑을 소재로 해서 쓴다.

칸나 구근 몇 뿌리 준비해 두었다가 보내야겠다, 그 수탉의 벼슬 같은 붉고 화사하고 뜨거운,

불씨처럼 품고 있는 소망 하나, 어느 고운 날, 불꽃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 위함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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