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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20) 생명을 위하여
[자청비](20) 생명을 위하여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15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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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상냥하게 반기는 주인은 머리 손질도 잘하지만 꽃식물도 잘 가꾼다. 미용실 입구에서부터 작은 꽃 화분들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싱그런 식물들이 반긴다. 고무나무, 산세비에리아, 아이비, 스킨답서스, 호야, 행운목 등 다양한 식물들이 초록을 과시한다. 창가 선반에는 다육식물들과 덩굴식물들이 저마다의 맵시를 자랑하고 있다. 미용실에 갈 때 마다 그들로부터 싱그런 기운을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인상적인 것은 수염틸란드시아가 풍성한 줄기를 내리고 있다. 줄기가 점점 자라서 아래로 옆으로 점점 풍성해지는 걸 본다. 얼마 전에는 줄기 끝마다 앙증맞게 작은 노란색 꽃을 피운 것을 보고 탄성이 나왔다. 그게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처럼 가느다란 줄기 사이에서 귓밥만큼의 노란 꽃이 수줍은 듯 웃는다.

틸란드시아는 공기를 먹고 자라는 식물이다. 공기정화 작용이 있는 식물이라 실내에 걸어놓으면 좋다. 뿌리가 없이 줄기를 공기 중으로 뻗어가는 식물이라 화분 없이 주로 매달고 키우면서 아래로 늘어뜨리게 한다. 자세히 보면 뿌리에 해당하는 짙게 보이는 부분이 있고 거기에서 계속 가는 줄기를 내린다.

틸란드시아는 물만 잘 주면 된다기에 두 번 사다 키운 적이 있다. 두 번 다 오래 못가서 말라 죽어버렸다. 물을 충분히 주었는데도 죽어서 나에게는 키우기 힘든 식물로 인식되었다. 키우던 식물이 죽으면 자책감이 든다. 그렇기에 꽃을 심으면 죽지 않게 하려고 물을 잘 주려고 하는 편이다.

미용실에 다녀올 때마다 꽃을 더 잘 가꾸어 보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우리 집에 있는 화분들은 주인을 잘 못 만나서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도 있다. 미용실 식물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물과 거름을 준다 해도 거기에 주인의 정성까지 먹은 식물이 더 윤기가 나고 싱그럽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화분에 물을 주었던 것은 죽지 않게 하려고 의무적으로 물을 주었음이다. 사랑이 담겨 있는 물이 아니라 의무적인 물이었다.

남편이나 나는 꽃식물에 호기심은 많으나 돌보는 정성은 부족하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꽃을 구해다 심어놓고도 꾸준히 돌보지 않아 며칠 못 가 죽게 만들기도 했다. 최소한의 의무로 돌보았기 때문에 식물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모른다.

미용실에 다녀온 후 다시 수염틸란드시아를 두 무더기 사 왔다. 매일 들여다보며 물을 뿌려주었다. 자세히 보니 조금씩 줄기가 길어지는 게 보이니 더욱 사랑스럽게 보였다.

하루는 남편이 ‘러브체인’이라는 식물을 가져왔다. 하트모양의 잎이 가느다란 자주색 줄기에 달려서 사랑스럽다. 남편은 사각 화분에 심고 현관 선반 위에 올려놓고 매일 들여다 보며 물을 준다.

나는 틸란드시아에게 남편은 러브체인에게 매일 물을 준다. 의무적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물임을 알 수 있다. 2박 3일간 집을 비우게 되자 아들에게 와서 물을 주라고 부탁했다. 이처럼 온 가족의 관심을 받아서인지 틸란드시아와 러브체인은 잘 자라고 있다.

내가 잊어버릴지도 모르니 러브체인에게 물을 줄 때 틸란드시아에게도 매일 물을 뿌려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틸란드시아가 매달려 있는 옆에 또 다른 덩굴식물이 걸려 있다. 초록 덩굴 잎이 아래로 늘여 뜨려 있어서 얼핏 보면 덩굴 생화 같지만 모조품이다. 남편은 거기에도 스프레이를 들이댄다. “그건 모조라니까요, 거긴 물 안 줘도 돼요.” 했더니, 하하하 웃으면서 하는 말

“ 혹시 알아? 거기서 생명이 되살아날지 모르잖아.”라고 한다.

“맞아, 맞아. 당신이 계속 정성으로 물 주는 것에 감동해서 생명으로 되살아날지도 몰라.”

며칠 후 틸란드시아 줄기에서 노란빛이 보였다. 꽃이다. 다음에 미용실에 가면 우리 집 틸란드시아가 꽃을 피웠다고 자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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