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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욱 시인, 네 번째 시집 『푸른 발이 사라졌네』 출간
김원욱 시인, 네 번째 시집 『푸른 발이 사라졌네』 출간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13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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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욱 시인
▲ 김원욱 시인 ⓒ뉴스라인제주

김원욱 시인이 네 번째 시집 '푸른 발이 사라졌네'를 출간했다. 시인은 제주 출신으로, 1997년 첫 시집 '그리움의 나라로 가는 새'를 내놓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인간과 자연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통해 가늠할 수 없는 세계와 소통해 왔다. 이번 시집은 시공을 넘나드는 확장된 사유의 공간을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고, 서정으로 녹아든 강렬한 신화적 시선이 치열하게 담겨 있다.

수록된 64편의 작품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미륵이 오는 방식’은 신화적 사유, 제2부 ‘그리운 문명’은 현실과 고뇌, 제3부 ‘하늘을 달리다’는 죽음과 성찰, 제4부 ‘웅성거리는 별’은 기억과 반추를 주제로 다뤘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생멸의 통찰과 인류애의 발현은 우주론적인 거역할 수 없는 대상으로 나타나고, 그 바탕에 제주신화가 자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색하는 김원욱의 시는 역동적인 신화적 상상을 보여 준다. 서정의 깊이에 꽂히는 따뜻한 시선과 내면에서 꿈틀대는 인류 근원에 대한 물음은 우리 시의 외연을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할 것이다.

김원욱 시집 '푸른 발이 사라졌네' 표지
▲ 김원욱 시집 '푸른 발이 사라졌네' 표지 ⓒ뉴스라인제주

해설을 쓴 김지연 시인은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신화는 자유롭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그것은 때로 일상의 서정으로 변모하고 때로는 삶을 관통하는 철학으로 변모하기도 한다.”며 “그의 시는 화려하고 난해하기보다는 담백하고 정갈하다. 무엇보다 낮고 따뜻한 포즈로 명료하게 빛난다.”고 말한다.

문무병 시인은 추천사에서 "문명의 폐허 위에 처절한 슬픔을 빚어낸 김원욱의 시는 제주신화와 함께 꿈을 꾼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사유(思惟)가 깊고 푸르다"며 "모순된 현실에 안착한 자신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인류 근원과 대자유에 닿으려는 몸부림이 치열하다"고 했다.

이어 "굿판에 서 본 사람은 안다. 있음과 없음이 거침없이 트인 널따란 벌판 미여지벵뒤에서 마지막으로 영혼을 떠나보내 본 사람은 안다. 제주 선인들의 세계관은 오롯이 신화에 기대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라며 "제주는 신화의 섬이다. 그런 점에서 김원욱의 시가 지향하는 신화적 가치와 인류애(人類愛)를 바라보는 기쁨이 크다"고 극찬하고 있다.

 

미륵이 오는 방식

 

할머니는 미륵 가까이 계십니까
서천꽃밭 가는 길
생채기 가득한 칠머리당에서
바다로 떠난 누군가를 기다린 적 있습니다
숭숭 뚫린 돌담길, 억새에 묻혀 일렁일 때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이
나를 수중 보궁에 처넣는다면
신선한 미각을 가진 용왕의 입속에서 잘근잘근 씹힌다면
흩어진 살과 뼈는 싱싱하게 돋아날까요
누구의 치성인지
어린 배꼽 쓰다듬던 마을에 사락사락 눈 내리고
육신의 부스러기처럼 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할머니 오시는 불도맞이* 하늘이,
시퍼런 작두 위
팔랑대는 벌레가 내 몸속 욱신거리던
벌레가 무더기로 내려와 비수처럼 박히는
질량을 알 수 없는 렌즈 속
나는 오래도록 미륵의 젖을 빨았습니다
 

* ‘불도맞이’는 제주 무속에서 삼신할망에게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 굿.
 

「미륵이 오는 방식」 전문
 

영등할망

 

큰바람 부는 날 하늘에 실금이 갈 것이다

벼락같은,

나의 서툰 언어는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지

낯선 말 밖에 좌정한 간절한 눈빛에 들어 지독하게 앓던

천계의 남루한 렌즈 속

거대한 별 무리 이끌고 억천만겁을 건너오시는

꽃 도포 펄럭이며 기어코 칠성판을 휘저으시는

내 안 가득,

거역할 수 없는 당신은 누구신가요
 

「영등할망,」 전문


미지로 가는 화석
 

뚜뚜 뚜뚜,
청진기 너머로 들려오는 미지의 신호음을 듣다가
말라비틀어진 가슴팍을 쩍, 열어젖혔다
긴 세월 달군 칼끝에서 뽀드득뽀드득
인간의 발걸음 소리 들려왔다
퇴적된 설원을 파헤치자
오방색 치마를 두른 미라가 재잘거렸다
곧바로 일어서서 달려올 것만 같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어질병 앓던 젊은 시절, 곤궁한 입술을 탐닉하던 기억 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날 직립을 꿈꾸었던가
그녀의 가녀린 몸을 쓰다듬고 선홍 입술에 호흡을 불어넣는 순간
생채기 가득한 칠성판에서 뚝, 등뼈 부러지는 소리 들렸다
나는 서둘러 뼈마디에 암각을 하듯 주저 흔을 남겼다
칼끝에서 시간이 찰칵찰칵 일어섰다
미지로 가는 시간의 암호가 얼마나 신선한지 궁금했다
조바심이 날수록 오염된 몸이 돌처럼 굳기 시작했다
봉합한 가슴팍의 실밥 사이로 멀리 추억여행 떠나는 기차 소음이 들렸다
나는 이미 미지로 보내진 진공 포장물인지도 모른다
직립한 미륵불의 전설처럼
공중에 서성이는 화석의 부스러기 속절없이 쏟아져 내리는 마을 어귀
마지막 신호음이 들렸다 뚜뚜뚜,
뚜뚜뚜
 

「미지로 가는 화석」 전문


푸른 발이 사라졌네
 

가네, 영등바람 타고 겅중겅중 소금기 머금은 팍팍한 땅 밟으며 가네 거대한 중력을 뚫고 빙하의 끝자락에 닿았다가 이름 모를 항성으로 두둥실 떠올라서 구린내 나는 우주의 내장 속으로 가네 멀리서 이승의 통신인 듯 아날로그 방식으로 호 호 호 입김 불던 사랑이 밀려오네 몽달귀신 손말명* 어우러져서 타닥타닥 불타오르는 창창한 바이칼호를 건너 질퍽거리는 양수의 바다, 어머니 정신 한쪽 밟으며 가네 잠시 엄청난 질량으로 다가온 칠성판에서 세차게 흔들리다가 서천꽃밭 적막에 들어 묵언뿐인 눈빛 뚝뚝 떨구는 사이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헐거운 뼈다귀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리운 숲, 돌아보니 푸른 발이 사라졌네
 

* ‘손말명’은 처녀 귀신, ‘몽달귀신’은 총각 귀신이다.
 

「푸른 발이 사라졌네」 전문

 

내 몸에 벌레가 산다

 

내 안에 벌레가 있다 분비물이 꽉 찬 서늘한 내장 저쪽 생의 한 장면을 물어뜯다가 내지르는 비명 같은 적막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똬리를 튼 비단구렁이 한 마리 검은 새 떼를 불러 모으는 혓바닥 사이 바둥대는 슬픈 빛의 파동일지도 모른다 내장 속 정경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퇴화한 몸에서 빠져나간 내가 공중으로 겅중겅중 뛰어오르는 것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거역할 수 없는 적막이 공중에 있음이 분명하다 내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저 광막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새 떼가 흔들어놓은 어둠을 바라보다가 정지된 한순간이 공중의 슬픈 빛에게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 또 다른 순간이 내밀한 정경을 숨겨놓지는 않았을까 어떻게든 수혈하지 않으면 내장은 말라죽을 것이다 피돌기의 저쪽은 창백하다 이때 엄청난 적막을 뚫고 새 떼가 달려왔다 꿈틀대는 정경이 처박힌 거역할 수 없는 공중, 흔적도 없이

한 생이 탈탈 털린 내 몸에 벌레가 산다
 

「내 몸에 벌레가 산다」 전문
 

■ 목차

제1부 미륵이 오는 방식

서리/ 곡우/ 강정으로 가는 비단구렁이/ 눈, 오네/ 미륵이 오는 방식/ 영등할망/ 물들어/ 서성이는 정거장/ 발자국/ 꽃잎에 갇혀서/ 미지로 가는 화석/ 공중 제단/ 푸른 발이 사라졌네/ 내 몸에 벌레가 산다/ 미여지벵뒤

제2부 그리운 문명

그리운 문명/ 봄밤/ 안 될까?/ 수상한 봄/ 줄,/ 나는 굴리고 싶다/ 마네킹/ 짐승/ 귀여운 올챙이/ 고사리/ 가시나?/ 그날이 멀지 않다/ 양파/ 밤비/ 미명

제3부 하늘을 달리다

하늘을 달리다/ 귀천歸天/ 먼지에게/ 매일 죽기/ 봉개 가는 길/ 너를 보내고/ 사이/ 응시凝視/ 부재, 속으로/ DNA/ 꽃구경/ 적멸/ 너의 어두움/ 서울의 십자가/ 시간을 달려가면/ 성냥팔이 소녀/ 슬픔을 팔아요

제4부 웅성거리는 별

위미爲美/ 달의 기억/ 나는 가끔 지귀도를 들고 온다/ 겡이죽/ 동백꽃 그날/ 지귀도地歸島/ 별처럼/ 집 한 채/ 껍데기/ 똥/ 동아이발관/ 말 속에 갇혀서/ 웅성거리는 별/ 꿈을 잃은 아침/ 무인 모텔/ 눈 속에 갇혀서/ 그런데 말입니다

 

■ 시인의 말

제주신화와 함께 꿈을 꾸었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인 ‘미여지벵뒤’에서 뒤척거렸다.

숙명일 수밖에 없는 길,

나는 또다시 긴 여정에 나선다.

2021년 여름

김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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