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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28) 보목동 가시선인장
[문상금의 시방목지](28) 보목동 가시선인장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12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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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는 시뻘건 고통이다, 따끔따끔 손에 잡힌 물집처럼, 늘 목에 걸리는 가시는, 그리움이다, 질긴 목숨이다, 악착 같이 달라붙는 문어발 되어, 마음 닿는 곳, 깊은 뿌리 내리는, 안식처이며 고향이다’

보목동 가시선인장
 

문 상 금
 

나는
보목동 가시선인장

칭칭 그리움으로 뿌리 내린다
북태평양 떠돌던 씨앗 한 톨

보목 바닷가
남루한 흙 한 평
쉴 새 없이 파도가 맨몸을 밀어낼지라도
자갈돌 짠 틈새에 하얀 뿌리,
악착같이 문어발 내린다

때로 자갈돌 사이
소금기 같은 처절함으로 피어난 꽃들은
오래도록 뜨거운 사랑을 하여
손바닥 같은 분신들을 셀 수 없이 터뜨린다

아아, 세찬 폭풍의 그 질주하는 분신들은
섶섬 앞바다를 날아올라
또 어느 바닷가 땅 한 평에 도착할까

아주 오래된 영혼의
손바닥 물집마다
톡톡 노란 꽃 피어낼까

눈부시도록
쓸쓸히 불타는

나는
보목동 가시선인장
 

-제4시집 「꽃에 미친 女子」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하늘과 땅이 한 몸이 되어 비바람치고 나무들이 흔들리고 바다가 뒤집혀 허연 속살을 들어낼 때면 가만히 앉아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잠을 잘 수도 없다. 내 영혼은 나뭇잎처럼 마구 하늘과 땅을 날아다녀, 이리저리 쏘다녀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그런 비바람이나 태풍이나 폭풍이 불어올 때는 가끔 제지기 오름 앞바다에 오래도록 서 있곤 하였다. 섶섬 앞과 동쪽으로 집채 만 한 너울이 허옇게 바다를 뒤집으며 다가오곤 하였다. 방파제 옆 빨간 돈키호테 등대를 금방 뒤덮고 하얀 거인 같은 그것들은 해안가 자갈돌에 부딪혀 하나씩 소멸해갔다. 또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것들은 우우거리며 내 영혼에 부딪혔다가 다시 시커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폭우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형체도 없이 그 진한 향기 같은 울림만 남아 온통 뒤범벅인 영혼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왔다.

그 해안가 부서지는 포말을 따라가다가 자갈돌 너머 조그만 모래밭에 뿌리내린 손바닥 가시선인장 군락을 만났다. 아주 오래된 영혼의 손바닥 물집마다 피어난 노란 선인장 꽃, 한림 월령 선인장 군락지나 사계바다에서 만났던 그것들과는 또 다른 뭉클한 느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멕시코가 원산지인 선인장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여기 보목 해안까지 밀려와 수백 년 동안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이렇게 외로움을 견디고 악착같이도 잘 살아있었구나, 울퉁불퉁한 물집과 상처들을 하나씩 어루만져 주었다. 손바닥엔 솜털 같은 가시들이 잔뜩 박혀 따끔거렸다. 금방 붓기 시작하더니, 물집이 잡힌 것처럼 빨개지는 것이었다.

보목 선인장 군락지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250년 전후로 추정되며, 제지기 오름 남쪽, 이주일 별장 앞, 현규화 할머니(2012년 당시 80세)소유의 납작집 마당, 바닷가 돌담을 둘러싸고 자생하고 있었다, 딸은 한연정으로 우연히 만나보니, 서귀포여자중학교 동창이었으며 ‘볼레낭개 할망집’이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다, 고사리를 잔뜩 넣어 푹 끓인 고메기 찌개와 톡 쏘는 홍어회와 홍어전, 홍어튀김이 일품이었다. 보목에서 자리물회가 아닌 다른 요리는 그 날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수령은 오래 되었지만 월령 선인장 군락지보다 규모가 작아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밤을 새워 ‘보목동 가시선인장’이란 시를 써 ‘서귀포문학’에 발표하였다.

서귀포시 문화재 담당자와 통화하고 서귀포신문(당시 이현모 편집국장)에도 보도를 부탁하였다, 그리고 서귀포신문 ‘문필봉’ 필진이었기에 직접 이 선인장을 소재로 한 수필을 써 발표하기도 하였다. 모두들 충분히 보호해야 할 가치는 있다고 공감하면서도 군락지 면적이 비교적 좁다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나무는 한 그루도 보호수로 지정되고 등록되는데, 선인장은 왜 그럴 수 없는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2015년 주민설명회를 거쳐, 2017년부터 침수피해 등 재해와 안전을 이유로 보목 바닷가를 따라 390m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어 2018년도 4월에 완료되었다, 하필이면 그 구간에 선인장 군락지가 있는 것이었다, 굉음을 내는 포클레인 칼날에 새파랗게 질린 선인장의 육신들은 갈가리 찢기고 뭉개지고, 자갈돌 위에 진득진득한 선혈이 낭자했다, 아아,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잘리고 찢겨 버려질 운명으로 그 먼 해류와 물결을 타고 여기까지 와서, 흰 뿌리를 내렸던가.

기특하다고 더 번성하라고, 시도 써주었는데, 그림도 그려주었는데, 너무 가슴이 메여, 지금도 가끔 아윤 선생한테 ‘부끄러운 줄 아세요, 평생을 보목에 사시면서, 선인장의 가치를 잘 아시면서, 지켜내지 못한 것은 큰 부끄러움이란 것을 아세요’ 하고 가감 없이 말하곤 한다.

그 날에, 그 찢긴 손바닥 선인장 서너 개를 들고 와서 우리 집 앞마당 서쪽 돌담 밑에 심어주며 속삭였다, ‘내 딸들아,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이 곳은 다시 너희들 안식처가 되고 고향이 될 터이니, 또 악착 같이 뿌리 내려라, 매일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해서 분신들을 수없이 태어나게 하라’

나뭇가지마다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리고 안개 자욱한 장마의 한가운데에서 어김없이 피어나는 치자꽃, 그 하얀 꽃을 잡고 마구 흔들었더니 손에 향(香)이 오래도록 배었다. 그 손에 밴 향처럼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 때로 가시나 물집을 닮은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서넛이 청석(靑石) 변영탁 선생 조문을 다녀왔었다. 삼농 선생은 ‘극락왕생’이라는 글을 올렸다. 창밖엔 장대비가 쏟아졌고 서넛은 하늘과 바다가 온몸으로 쥐어짜며 울어대는 검은 여 오상철 시인의 가게에 가서 오후 내내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나는 투박한 막걸리 잔을 받아만 놓고 말을 잃었다, 벌써 마음의 바다는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칭칭 흘러넘쳤다.

오래 묵을수록 더욱 선명해지며 또렷해지는 먹빛, 그 진한 먹빛을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초록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텃밭에 머윗대가 가득 자라나고, 감나무 너머 수돗가에 놓인 세숫대야는 그 새까맣다 못해 숯처럼 시커먼 먹빛으로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벌갠 얼굴의 청석 선생은 ‘붓을 정성스레 빨았다’고 표현하시며 활짝 웃으셨다.

‘가만있자, 오늘은 어떤 글을 써줄까?’ 그리곤 일필휘지로 심청사달(心淸事達)을 써주셨다. ‘마음이 깨끗하고 맑으면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다’, 이 심청사달 필법은 아주 유명하여 여러 행사할 때에 수차례 시연되었으며, 현재 동영상 자료로 남아있기도 하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純眞無垢)랄까, 물길 따라 물이 흘러가듯이 그대로 일평생 글씨를 쓰셨다는 청석 선생 너머로 짙은 묵향(墨香)이 풍겨 나왔다.

‘내가 먹을 갈고’ ‘먹이 나를 갈고’ 그렇게 또렷하게 선명해지며 한 세월을 살다가 이렇게 가는 것이 생(生)일 것이다.

툭하고 시간이 날 때는 종종 자택으로 놀러가곤 하였다,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드나드는 제자(서귀여자중학교 재학시절 한문선생님)이며 시인(문상금 시인이라 늘 호칭하였음)이며 벗이었던 것이다, 아무런 기별 없이 가도 늘 반가워하시고, 글 써놓은 것이나 심사위원으로 다녀오신 것 등등 항상 자랑 말씀이 좋으셨다, 그리곤 그 날 그 날의 느낌 따라 좋은 문구나 혹은 원하는 문구를 써주시곤 하셨다. 나는 먹을 갈아보기도 하고 한 아름 쌓여있는 연습용 화선지를 들고 킁킁 먹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오래된 한문 고서적들을 꺼내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 해 돌아가시기 전날, 2012년 6월 24일 오후 3시 무렵에도 방문하였더니, ‘응, 왔구나’, 하시며, 그 날 이상하게도 대나무 목침을 베고 누워 계시다 일어나셨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얼굴이 먹물처럼 검고 또 붉은 빛이었다, 혈압이 좀 있고 땀이 나고 기운이 없어서 누워 계셨다고 하셨다, 소름이 돋았다, 어쩐지 불길했다, 깜짝 놀랐지만 내색을 안 하고 있으니, 또 ‘무슨 글 써 줄까?’하셔서 무심결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해버렸다, ‘그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 하시곤 일필휘지로 크게 써주셨다.

그리곤 곧 기운이 나시는지, ‘내일은 6,25인데, 오전 10시에 서귀북초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참전용사로서, 반공에 대하여 얘기해 주기로 했어’ ‘그래서 이 옷은 내일 입으려고 하나 샀어’ 하시며 반팔 파란색 남방을 꺼내시며 자랑하셨다, 검고 붉은 얼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튿날 서귀북초등학교 어린 학생들을 만나러 가기 위하여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가서 씻고 나오셔서 잠깐 의자에 앉아 계신채로, 그만 심장마비로, 이 세상을 떠나신 것이었다, 그동안 써주신 수십 편의 글씨 중에 ‘일체유심조’는 그렇게 마지막 써주신 글씨가 되어 버렸다.

상상이나 하였으랴, 물결을 타고 또 세찬 물결을 타고 흘러와 제주 보목 바닷가 자갈돌밭에 뿌리내린 가시선인장의 끈질긴 목숨을, 그리고 청석 선생님처럼 그 고요 끝에 물집이 내리듯, 황망히 가버리는 안타까운 목숨을, 정말 이 세상을 오고 가는 것은, 예측불가이며, 그 누구도 내일을 자신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살아있는 매순간마다 탄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 그리고 시작과 끝이 공존한다. 그 하나의 탄생과 죽음의 틈새, 만남과 이별의 틈새, 시작과 끝의 틈새에서 나는 오래도록 머물며 시를 쓴다. 여기서 오래도록 머문다는 것은 기쁨이나 슬픔이거나 아픔들을 아주 세밀한 감정으로 깊이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솜털 가시에 박혀 따끔거릴 때 다시 선인장을 떠올리고 애틋해하고, 가끔 글씨를 꺼내보고 눈시울 붉히며 되돌아보고, 그 글씨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변하는 일상(日常)에서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진한 먹빛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또 악착같이 문어발 뻗는 가시선인장처럼 뜨거운 사랑의 뿌리를 내리며 진솔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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