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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54) 만첩홍도
[양순진의 시의 정원](54) 만첩홍도
  • 양순진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11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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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시인
김길녀 시인
▲ 김길녀 시인 ⓒ뉴스라인제주

만첩홍도

김길녀

겹겹이 쌓은 붉은 문장

열흘은 너무 길다
딱,
사흘만
내 남자로
머물다 가시라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 애지, 2021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시를 찾아 헤매었다. 나혜석을 서성거리다가, 버지니아 울프를 서성거리다가, 김희준을 서성거리다가, 실비아 플라스를 서성거리다가, 김길녀 시인에게 와 멈추었다. 꽃복숭아 한창 피어나는 5월에 하늘의 별이 된 시인. 네 번째 시집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 출간 앞두고 병마에 지고 만 안타까운 시인.

작고한 예술가들의 길을 쫓다보면 삶의 허무를 느끼기도 하지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를 고심하게 된다. 힙포크라테스의 격언 중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유동적이며, 판단은 어렵다.'를 깊이깊이 되새김질 하면서.

만첩홍도는 사월에서 오월에 잎보다 먼저 피어나는 적색 만첩꽃이다. 꽃복숭아, 남경도, 남경도화, 붉은 겹복숭아꽃으로도 불린다. 꽃말은 '고결, 정조, 결백, 충실'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복숭아 같은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만첩'은 '겹꽃'을 과장되게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만첩빈도리, 만첩홍매, 만첩산철쭉, 만첩조팝나무, 만첩개벚 등 만첩이 붙은 꽃들이 많다.

  시인은 욕심도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사랑을 소유하려 하고, 영원히 내 곁에 머물기를 희망하는데 '열흘은 너무 길다/ 딱, 사흘만' 머물다 가라니.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깊이 되짚어보면 이미 내게로 온 사랑이 아니라, 아직 나에게 닿지 않는 사랑에게 '열흘이 아니어도 좋다/ 딱, 사흘만이라도' 머물러 달라 마음으로 간곡하게 애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쿨하게 '머물다 가시라' 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에서 처럼 역설적이지 않을까. 아니 확신한다. 누구도 이별을 깔아놓진 않을 테니까.

  혹은 가장 힘든 시기에, 그 누구도 위로가 안 되는 시절, 붉게 핀 꽃복숭아에 취해, 제발 사흘만 더 피고 지라고 꽃점을 쳤을지도 모른다.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꽃은 피었다 지고, 우리 삶도 피었다 지는데 말이다.

  지금은 7월, 만첩홍도화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김길녀 시인이 남긴 '만첩홍도'에 젖어 그 붉은 생과 붉은 문장을 읊조릴 뿐이다. [글 양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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