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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9) 이야기의 힘
[자청비](19) 이야기의 힘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7.08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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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나는 4월부터 12주 코스의 영상미디어 수업을 받았고 이번 주에 수료를 앞두고 있다. 작품을 만들어 제출해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기에 한창 여름 밭농사로 바쁘던 시기라 몇 번 결석을 했을 때는 지도교수가 유튜브에 올려놓은 동영상을 보며 공부했다. 내가 직접 동영상에 자막을 넣고 노래를 넣을 줄 알게 되자 연습 삼아 여러 개의 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그중에서 해녀들을 취재할 때 찍어놓은 사진들로 만든 동영상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그것으로 졸업작품을 삼기로 했다. 졸업작품까지 만들어 놓은 터라 출석은 출석 일수가 모자라지 않기 위한 걸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졸업작품으로 낼 수가 없었다. 초안을 내고 그 초안에 대한 평가 수업 직전에 받은 강의 때문이었다. 교수가 좋은 작품은 그 안에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획안을 쓰고 기, 승, 전, 결의 흐름을 생각하라고 했다. 이 수업을 듣고 보니 내가 만든 동영상은 해녀들의 풍경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고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졸업작품을 다 만들었다고 느긋해 있던 나는 기획안 형식을 출력하고 머리를 싸매 끙끙대야 했다. 그러다 예전에 글이 안 써져서 방황하다가 깜깜해야 집에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의 느낌을 영상으로 만들기로 했다. 기획안을 촘촘히 채우자 어떤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야 할지 감이 잡혔고 너무 비장하지 않게 코믹한 부분도 넣으면서 영상을 완성했다.

이 경험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이야기라는 것이 2분 남짓의 짧은 영상에도 필요하고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짧은 광고에 이야기가 활용되고 있는데도 내가 만드는 영상에 이야기를 넣지 않았다. 제품의 이런 점이 좋다고 말하는 광고보다 초코파이 광고처럼 정(情)을 스토리텔링화한 것이 더 오래 여운이 남는다. 영화처럼 광고를 찍는 ‘돌고래유괴단’의 광고들을 보면 웃기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관광지도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인상에 남기도 하지만 거기에 어떤 전설이나 설화가 따라오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예를 들어 서귀포의 외돌개를 그대로 우뚝 선 바위로 기억하기보다는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난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바위가 되고 할아버지 시체가 그 바위에 흘러왔다는 전설이 가미됐을 때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이야기가 기억하기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내 차 번호를 처음 외울 때 이렇게 이야기 장면으로 기억했다.

‘여우가 생선장수 리어카를 타고 고개를 넘었더니 여우와 다람쥐가 두부장수 리어카에 탄 여우를 만나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 하면 할머니가 지팡이 짚고서 잘잘잘’이라는 어릴 때 부르던 노래를 응용해서 만든 것이다.

학생들에게도 외울 게 있을 때 이야기를 만들어 외우게 하면 그 기억이 오래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무엇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거나 오래 기억하고 싶을 때 이야기를 먼저 만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 사람은 천성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스토리텔러이며 이야기에 끌리고 이야기 속에서 성장한다. 어눌할지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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