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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26) 회광반조
[문상금의 시방목지](26) 회광반조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6.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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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는, 낙엽 한 장이고 참선이며 수행이고 멈춤이다, 가던 길 멈추고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늘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다, 끊임없는 돌팔매질(외부의 말의 파동)이나 치고 올라오는 생각의 실타래를 미련 없이 잘라내고, 진실한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다, 본래 바탕인 내면으로 들어와서 내면을 잘 살피고, 살아있는 불성(佛性)을 찬찬히 바라보는 것이다, 내려놓음이고, 의식의 대전환이며, 가슴 뛰는 깨어있는 삶이고, 참 나의 모습이다’

회광반조(廻光返造)


문상금
 

모든 시작점은 내 안에 있다고
모든 종결도 내 안에 있다고

소통도 불통도
밖에서 찾지 말라고

데구르르 구르는
낙엽 한 장

회광반조(廻光返造)
회광반조(廻光返造)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모난 돌이 바다로 갈려면, 모난 곳이 닳고 다 닳아서, 둥글어져야 합니다. 누군가의 허물이 보이십니까? 아직 바다는 멀었습니다.’ 잠과 잠 사이로, 흰 조약돌에 한 글자씩 글자들이 씌어 있었다. 그 글자들을 퍼즐처럼 맞춰보니, 이러한 문장이었다.

눈꺼풀과 눈꺼풀 사이로, 항상 많은 생각들이 떠돈다. 떠도는 생각들 너머로 퍼뜩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돈오(頓悟), 이 두 글자를 아주 좋아한다.

‘눈꺼풀이 깜빡하는 그 찰라, 아주 잠깐의 순간이 바로 인생이다.’ 이 문장은 영실에 있는 사찰, 오백나한사 들어가는 난간에 아주 조그맣게 씌어 있었다. 오래도록 바라보다 그냥 귀가하였다. 오늘 하루 마음공부는 이것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자꾸만 허물이 보이니, 너의 허물이 보이니, 어찌하란 말이니? 내 허물은 더 많고 무거운데, 그만 잊어버리고, 너의 허물만 잔뜩 보이니, 어쩌란 말이니? 파도야, 어쩌란 말이니? 흰 파도야, 달려오다 무너지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야, 바다는 아직 멀었는데, 어쩌란 말이니?’

살아가다 보면, 퍼뜩 스치는 생각, 누군가의 말 한마디, 문장 한 구절, 시 한 대목이, 특히 해우소(解憂所, 화장실, 근심을 푸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글만 열심히 암송하여도 많은 공부가 된다.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돌이나 나무, 꽃, 이름 모를 새들한테서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오늘은 오일장을 갔다 오는 길에, 유월의 장미꽃과 수탉의 벼슬 같은 붉은 칸나 꽃을 덤으로 보고 와서는, ‘시장(세상)과 들판(자연)이 온통 학교다.’라고 노트에 또박또박 기록하였다.

오일장에서는 정밀한 스케치 같은 부지런함과 치열함을 보았으며 장미와 칸나한테서는 아주 정열적인 자태 너머로 드리워진 뜨거움과 서늘함을 동시에 보았다, 여기서 뜨거움은 바로 붉은색, 붉은 피를 의미하고, 서늘함이란 것은 가시이거나 치켜든 닭 벼슬 같은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을 깊이 예감하였음을 의미한다.

하루 종일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것, 선명하였던 것 그리고 오늘 들었던 말들 중에 가장 아팠던 말, 가장 행복했던 말들을 기록하다보면, 모든 철학과 진리가 그 속에 담겨 있곤 했다. 누렇게 퇴색된 노트는 한 사람의 생(生)에 대한 사색의 기록이며 곧 한 권의 철학 서적이나 진리 서적이 되는 것이다.

노트를 펼쳐보니, 한 쪽에는 ‘모든 중심을 자기 자신으로 삼으면 된다, 약속도 자기 자신하고 하는 것이다, 맹세도 자기 자신하고 하는 것이다, 신의도 자기 자신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가장 처절하게 싸우는 것도 자기 자신하고 하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세상에 모든 중심은 바로 자신이며 자신을 제어하고 싸워서 이겨낼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어른(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고 승리자이며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만 먹었다고 결혼을 했다고 어른인가, 아니다, 여전히 어리고 미성숙한 어른들을 많이 만난다, 또 나이가 어릴지라도 성숙한 어른들을 만나게 되면, 아주 기쁘고 흐뭇해진다.

다른 한 쪽엔 사랑하는 법에 대하여,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내가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한 번 품은 사랑은 사방팔방(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사랑이 흩어질지라도 영원히 품고 가는 것이다’ 라 적혀 있었다.

사랑은 먼저 베푸는 것이다, 이미 베푼 여러 가지를 곧 잊어버리고 또 베푸는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또 내어주는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일진대, 수억 명의 사람들 속에서 내가 잠시라도 애틋하고 기뻤던 몇몇의 사람들, 비록 만나든, 설령 못 만나든, 얼마나 보석 같은 인연들인가, 함부로 떠나보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불성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하늘과 땅과 바다, 꽃과 나무와 돌들, 온갖 만물들, 산천초목이 다 불성을 띠고 있지 않은가, 특히 사람은 본래 엄청난 불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시인은 성선설을 믿는다.

섬 바위 비탈, 깡마른 소나무를 기대고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와 설움과 온갖 무시당함과 절망과 실패의 덩어리를 토해내듯,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아니 소나무가 그렇게 울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소나무의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 투박하고 앙상한 소나무의 등껍질, 굵은 비늘이 다 떨어지도록 두드려 주었다, ‘내가 알아줄게, 내가 믿어줄게, 내가 풀어줄게’, 섬 바위 흰 물결로 몰려와 산산이 부서지던 그 날의 물보라여!, 삼십 년 후에 장문의 편지가 왔다, ‘봄은 다시 왔다’며, ‘봄은 기어이 당당히 왔다’며, 그렇게 빙그레, 불성으로 편지가 도착하였다.

숱한 시인들은, 자기성찰로 내면세계를 응시하면서 자신의 불성을 발견해냄은 물론이거니와, 또 다른 사람과 만물들, 온갖 산천초목의 불성을 찾아내어 거칠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제주에 살고 있는 시인들은 신들의 비밀도 시로 표현해낸다, 그러고 보면 제주 시인들은 혹 ‘차사본풀이’에 나오는 강림차사(저승사자, 이승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깊이 공감하며 울고 웃는 감성적인 존재)의 후예들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한라산 영실(靈室)에 간다, 거기서 신(神)을 만난다, 숲 사이로, 숲 너머로, 불쑥 솟은 오백나한 바위들을 바라보며 바위 속에 사람을, 사람 속에 깃든 바위를, 신(神)들을, 가만히 바라다본다.

이곳 제주에는 신들이 참으로 많아, 그 일만 팔천의 신들은 제주도의 산, 구름, 골짜기, 포구, 바위, 신당, 당산나무, 동굴, 우물, 우리집 앞 먼나무와 은행나무에 또 서귀포 명동로나 이중섭 거리의 듬돌 등등에 숨어서 살아간다. 나는 그것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 하고 손 흔든다.

그 숨어있는 신들의 소곤대는 비밀을, 그 비밀에 깃든 불성까지도 찾아내고 알아내어, 언어로 표현해내는 작업을 하는 시인은 밤낮 시를 쓰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다, 그래서 신명난 무당의 굿판처럼 또 한바탕 시를 쓰곤 하는 것이다.

회광반조(廻光返造),회광반조(廻光返造)...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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