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순간의 예술 디카시 감상
밑그림
안정된 구도에 섬세한 선
불모지를 파라다이스로 가꾸는
첫 작업
파릇파릇 새움은 돋고
_ 이준실
<이준실 시인>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중국 조선어문 교사 재직중
문학시선 등단
담쟁이넝쿨은 담을 기어오르며 산다고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담쟁이가 기어오르는 곳은 담 뿐이 아니지요. 나무나 시멘트 벽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 터를 만들어 버리지요 줄기에 빨판같은 뿌리가 있는 까닭이지요. 대개 식물의 뿌리는 중력과 같은 방향인 땅속에서 자라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인 위로 자라는 법인데
담쟁이는 이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담쟁이' 시의
첫 연을 보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략
빈 공간이 있는 곳은 상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뻗어나가 턱이나 방해 물체가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그것조차 다 덮어 버리는 놀라운 생명력
요즘은 일부러 담쟁이를 심어 건물의 인테리어는 물론 복사열까지 낮춘다 하니 그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옛 조상 중에는 소나무를 군자에 비교했다면
담쟁이를 소인배라고도 했다니 그것 또한 아무 곳에나 잘 붙어 자라는 특징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시인은 담쟁이 줄기가 얼기설기 벽돌 위에 뻗어있는 모습을 보며 노래합니다.
'안정된 구도에 섬세한 선
불모지를 파라다이스로 가꾸는
첫 작업
파릇파릇 새움은 돋고'
아무리 웅장한 건축물이나 숲이라도 첫 작업이 반드시 있지요
첫 작업이 어떠냐에 따라 결과물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밑그림이 중요하지요
디카시로 만나는 담쟁이가 그린 밑그림
아직은 이파리가 드문드문 나 있지만 곧
풍성해지겠지요. 시인의 언술처럼 곧
파라다이스가 되겠지요.
6월도 중순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온 것 같습니다 아마 저 밑그림을 그린 담쟁이는 이미 푸른 벽을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푸르게 시원하게 늘어진 담쟁이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글 구수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