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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23) 인동꽃
[문상금의 시방목지](23) 인동꽃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6.07 15: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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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女人), 반짝반짝 밤낮 피어나는 금은화(金銀花)야, 수밀도(水蜜桃)의 어머니 가슴속 향기는 시인의 눈과 가슴을 적시고도 온 세상을 다 덮는다, 감히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

인동꽃
 

문 상 금
 

내 어머니

한사코 따라붙던
가난의 굴레

육 남매 키우시느라
한평생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허리

반짝반짝 곱게 피어난
금빛과 은빛의

하루 종일 어머니는 안 계셨다 해 질 무렵 꽃 한 자루 머리에 이고 돌아오셨다 너나없이 가난했던, 돈 한 푼 꿀 수도 없었던 시절에 쌀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산으로 올라가 종일 인동(忍冬)꽃을 따셨다 허기져서 인동꽃술을 쪽쪽 빨면 아주 조금의 꿀맛이 입술을 적셨다 꽃 한 자루 머리에 이고 집으로 걸어오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늘 숨이 막혔다, 가슴이 아팠다, 저 자루 속의 수십 만 수백 만 개의 꽃을 따시며 어머니가 종일 흘리셨을 눈물과 한숨과 혼잣말이 가슴 아팠다 가난하다는 게 슬프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종일 혼자 중얼거리시며 절망하시다가도, 어느 순간 강인해져서 씩씩하게 꽃 한 자루 머리에 이고 집으로 오시는 어머니가 너무 아름다워서, 늘 가슴 한 쪽이 저려오곤 했다

양 비탈길에
눈물 글썽이는
옥양목 앞치마
 

-제2시집 「다들 집으로 간다」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시내를 천천히 걷다가 철물점 입구에 놓여있는 화분에, 마치 검은색 독사 같은, 분재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새순이 움트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혹 이거 인동초 아닌가요?’ 주인이 ‘아니 이걸 어떻게 다 알아 보셤수과?’ 오히려 놀라워했다. 산에 갔더니 나무처럼 굵은 인동초 줄기가 있어서 칡뿌리 캐듯 잘라 와서 흙속에 묻어두었더니, 이처럼 끈질긴 목숨 뿌리내려 새순이 돋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름쯤 후에, 실로 오랜만에 일정 선생과 점심을 먹고 솔오름(미악산) 주차장에 푸드 트럭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안개비가 때마침 엄청 내려서, 차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일정 선생이 ‘저 앞 비탈에 반짝이는 꽃이 보여요?’ ‘그래요, 무슨 꽃이 있는가요?’ 안개비속에 차에서 내려 솔오름 비탈길로 서너 걸음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아, 어머니!’

하늘로 소풍 떠나신지 십년이 넘도록 꿈에 한 번 안 비추시더니, 이 곳에 이렇게 조용히 금꽃을 은꽃을 활짝 피워 올리고 계셨다니, 수밀도의 풍만한 젖가슴으로 고운 향기 품어 올리고 계셨다니. 유독 흰 얼굴의 어머니는 평생을 그 흔한 파마머리 한 번 안 하셨다, 그걸 닮았는지 나도 결혼식 올림머리 할 때 파마 한 번 해보고, 마흔 살에 긴 머리 자른 기념으로 또 한 번 파마해보고, 그냥 손으로 쓱쓱 빗질한 채로 살아갈 뿐이다.

언젠가 일정(一井) 선생이 그 손으로 빗은 머리를 보고, 사자 갈기 같다며 ‘파마 새로 하셨어요?’ 물어왔다, 오히려 내가 다 어리둥절해지는 것이었다. ‘여태 몇 십 년을 만나면서도 파마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니’, ‘나에 대해서 아직도 한참을 모르는 구나’, 그래,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만 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실은 아주 미미한, 일부분을 엿보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1981년 5월에 서귀여자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 일 때, 나는 항상 학교 끝나고도 매일시장이며 바다며 성당이며 돌아다니고 가보는 곳이 많아서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해서, 귀가가 항상 한밤중이었다. 양말이나 검정 스타킹도 자주 구멍이 뻥뻥 뚫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저녁 6시 무렵에 일찍 집으로 들어왔다, 한밤중에 귀가할 때는 당연히 집에 계셨다가 밥상을 차려주셨던 어머니가 안마당 뒷마당 다 살펴보아도 안 계시는 것이었다.

‘참 이상하다’ 하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 앞마당으로 큰 자루를 머리에 이고 작은 몸집에 흰 옷의 어머니가 쓱 들어와서는 뒤 곁으로 가시는 것이었다, 살짝 따라가 보니, 큰 자루를 내려놓고 머리 수건을 풀어 비로소 이마에 땀을 닦으시고는 한 손을 갖다 대고 허리를 쫙 펴시는 것이었다. 마치 무슨 비밀을 목격한 것처럼 어머니를 차마 부를 수도 없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자루를 풀어보았다,

아, 그것은 바로 꽃들의 꽃잎들의 향기들의 주검이었다, 유행가처럼 ‘백 만 송이, 백만 송이 장미’가 아니라, 금색 은색의 꽃들이 포개지고 엎어지고 서로를 의지하고 기댄 채로, 눈물범벅인지 한숨 범벅인지 정체모를 어떤 끈적끈적한 고단함과 기다림에 지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였다, 뒤 곁에 놓여있던 자루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고, 또다시 한밤중 저녁밥상이 여느 때와 달리 조금은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동그란 밥상 앞에 마주앉은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저번에 사고 싶어 했던 책이 뭐랬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응 그거 이번에 초판본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작은 에세이집인데, 천원인데, 나중에 사려고’ ‘그럼 갑자기 돈이 좀 생겨서, 이것 천원 줄 테니까, 내일 학교 끝나고 남주서점(허영선 시인의 부모가 운영했던 서점, 허 시인과 나는 나중에 심상 시전문지로 등단하였음)에 가서 사렴’ 하시며 바지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지폐 한 장을 꺼내시는 것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 꽃들의 비밀을 어머니의 비밀을 그 슬픔을 눈물을 단숨에 다 알아버리는 순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정말? 신난다, 내일 꼭 사가지고 올게, 와서 큰 소리로 읽어줄게!’ 어머니는 신여성이었다, 총명하셨고 기억력과 암기력이 다 좋으셨다, 영어 일본어도 곧잘 하셨다, 그러나 결혼하시고 육남매 키우시느라 그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시는 것이었다. 다른 언니오빠들은 그 사정을 너무나 잘 알아 있어서,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 한 번 제대로 못하는데, 나는 늦은 밥을 먹으며 어머니한테 그날 내가 공부했던 것, 보고 들은 것, 아름다웠던 것들을 조잘조잘 얘기하며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는 책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며, 꼭 사서 읽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사주시곤 하셨다.

2020년 봄부터 여름까지 책 정리를 일부 하였다, 서귀포문학 제1집부터 30집까지를 전부 찾아내고 구하여 짝을 맞추어 놓았고 전공서적들과 문학서적들을 나누어 분류해 놓았다. 내 책이나 물건들은 아무리 어질러 있어도 다른 가족들이 정리하거나 버리거나를 못하는 것이 우리 집 불문율이다. 그날 그 날 읽던 책이나 물건 속에는 사진이나 그림 소품이며 돈이며 편지, 하다못해 잘 말린 네 잎 클로버라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책 정리 덕분에 많은 것들을 찾아내었다, 본래 있었던 것이지만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었기 때문에, 갑자기 부자가 되는 느낌이었다. 아윤 선생의 첫 시집 ‘서귀포(1978년 출간)’를 펼치니, 왈종 화백의 수묵 엽서화 한 점이 툭 하고 떨어졌다,

‘에고, 여기에 잘 있었구나?’, 찾을 때는 그렇게 안 보이더니만, 당시 1991년부터 왈종 화백은 서귀포 보목포구 가는 길 하천 옆에 맨 처음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2년도 6월에 나는 심상으로 등단하였는데, 그 얼마 후에 두셋이 보목동 아윤 선생 초가집에서 시를 중심으로 대화들을 나누다가, 서울에서 내려온 왈종이라는 동양화가가 있다고 ‘ 한 번 작업실 그림 보러 가볼까?’ 하셔서, 우르르 작업실을 들렸을 때, 처음 만난 기념선물이라며 즉석에서 그려준 1호짜리 수묵화였다.

그 때부터 왈종 화백과는 인연이 이어져 수많은 교류와 영감이 이루어졌고 특히 2013년 5월 31일 정방폭포 앞에 왈종 미술관을 개관할 때, 하루는 직접 전화가 오셨다. ‘바쁘시겠지만 그래도 자원봉사자 팀장’으로 오셔서 도와주면 참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당장 미술관으로 내려가 하루만에 15명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을 모집하였고 확정하였으며 그 후 오년간 묵묵히 미술관 일을 돕다가 현재 가게를 개업하면서 미술관 일은 종료하였다.

다른 책을 흔드니, 누런 봉투가 툭 떨어졌다, ‘결혼을 축하하며, 큰 언니’ 봉투 속에는 결혼자금으로 보태라고 큰 언니가 전해준 제주은행 일십 만원 수표 수십 장이었다, 그 고마운 돈이 이십오 년이나 책 속에 잠들고 있었다니, 에고, 큰 언니한테는 비밀로 해야겠다.

유독 빛바랜 책이 손에 잡혔다, 바로 어머니의 그 눈물의 천 원 꼬깃꼬깃한 돈으로 산 법정스님의 ‘무소유’였다. 손바닥 크기만 한 그 책은 현재 일백만원 정도의 가치가 매겨졌다고 언젠가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1981년 5월에 민옥이와’ 한 귀퉁이에는 그렇게 서명이 되어 있었다, 살아가다 기념될 만 한 것, 특별한 것들은 모두 기록을 해두고 서명을 해두고 사진으로 찍어 두고 또 시나 글로도 그 느낌과 감동과 울림을 표현해 줄 것을 권한다.

살아가면서, 생(生)이라는 노트에 캠퍼스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시인이고 수필가이고 동화작가이며 또한 화가이다, 시시각각 빛나고 푸르게 변해가는 하늘과 바다와 나뭇잎들과 꽃잎처럼, 그 같은 하늘과 바다와 나뭇잎과 꽃잎,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한다면 아주 따뜻하고 위대한 창작 작품들이 탄생할 것이다.

‘아, 어머니!’ 그렇게 어머니는 금빛 은빛으로 반짝반짝 피어났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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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 2021-06-07 16:04:22
덕분에 ~♡
저도 다시 한 번 크게 불러봅니다 ~♡
아! 어머니 ~ 사랑하는 어머니 ~♡

용두암 2021-06-07 15:36:24
대단하신 시인님 같아요.
옛날 생각나네요, 크게 한번 불러봅니다.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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