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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22) 법대로 하세요
[자청비](22) 법대로 하세요
  • 송미경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6.03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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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송미경 수필가
▲ 송미경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정해진 날짜에 맞춰 한 달에 한 번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간다. 진료를 마치고 병원 주차장 오르막을 막 오르려는데 앞에 가던 차가 갑자기 후진을 하는 것이다. 뒤에서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소용없이 그만 내차를 들이박고 말았다.

운전자는 여자였다. 블랙박스도 있고해서 조심스레 차를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밑에서 오르려는 차가 있는 줄 알면서 왜 후진을 하느냐, 하니 오히려 큰소리치며 멈추려고 하였지만 차가 말을 듣지 않았다며 막무가내로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도 않고 무조건 법대로 하자는 말에 어이가 없어 차량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의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블랙박스에 모든 상황이 찍혀 있으니 판단은 보험사에서 할 것이라 생각하며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보험사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가해차량이 내 차 앞부분에 긁힌 자국을 본인의 옷소매로 열심히 닦는 것이다. 순간 말끔하게 닦으니 위에 긁힌 자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미세하게 흔적만 보일뿐이다. 또한 사고 당시 충격에 움푹 파였던 부분은 시간이 경과되니 외관상 원래 상태로 말끔하게 복귀되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사고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순간 당황스러웠다.

보험사에서 도착하자 먼저 블랙박스를 살펴보았다. 혹시 안전거리 미확보로 내게도 잘못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100% 상대방 차가 잘못이라 한다. 사고 당시 안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은 웬만한 승용차들은 큰 충격에도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서서히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괜히 큰 사고도 아닌데 소란만 피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대 차량 보험사도 도착했다. 더욱 의기양양한 태도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법대로 하라며 억양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상대측 보험사도 법대로 하라는 말에 어이가 없는지 보험처리를 하든지 서로 합의를 하든 알아서 하라고 제안했다. 뭘 믿고 이러는지 여전히 기세는 꺾이지 않고 서로 전화번호만을 교환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고 수습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어머니는 병원 현관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께 상황을 설명하고 집으로 모셔 가는데 상대측에서 전화가 왔다. 방금 전까지 법을 앞세워 큰소리치던 사람이 황당하고 어이없게도 순한 양이 되어 풀 죽은 목소리로 합의를 하자는 것이다.

처음부터 법을 상대로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별문제 없이 해결을 하였을 텐데, 쇠약한 어머니를 고생시킨 생각에 억울하면서도 화가났다. 미세하게 긁힌 승용차를 보니 부아가 치민다. 기회에 수리비를 제대로 받으려고 했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앞으로는 운전조심하고 법을 그렇게 좋아하지 마세요. 법 좋아하다가 사람 잘못 만나면 우스운 꼴 당합니다. 사고 당시와는 달리 연거푸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황당 스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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