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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22) 늙은 감귤나무를 위하여
[문상금의 시방목지](22) 늙은 감귤나무를 위하여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5.3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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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는 것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비로소 넓은 시야가 열리고, 경청(傾聽)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비로소 밝은 지혜의 눈이 열리고,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물러날 수 있음이다. 늙었다는 것은, 사방팔방 뛰어오르는 욕망을 비로소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평화로운 마음으로, 절대 고독의 한가운데, 우뚝 서서, 하늘과 바람과 푸른 별과 외로운 영혼에 대하여 비로소 얘기하고,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늙은 감귤나무를 위하여
- 세미놀
 

문상금
 

생살 찢는 아픔으로
접목한 세미놀 감귤나무는
어느 순간 자신의 운명을 짐작이나 하였으랴

저기 저 하논에 가서 보아라
강한 수세(樹勢)로 땅 속 깊이 뿌리 뻗으며
황금 열매 맺는 세미놀을

나무에 대한 시(詩)를 쓰려면
나무에 대한 그림을 그리려면
먼저 나무의 마음이 되어 보아야 하듯이

바람 부는 날
나무처럼 찢기며 흔들려 봐야 하듯이
새들과 함께
나무처럼 노래해 봐야 하듯이

나는 오늘도 붉은 언덕에 서서
한 그루의 늙은 감귤나무가 되어
하늘과 바람과 푸른 별과
더불어 흔들리며 외로운 영혼을 이야기하고
끝없는 영원(永遠)을 노래하였다

긴긴 동짓달 눈보라 속에서도
울룩불룩 근육질 얼굴로
묵묵히 자신을 지켜온 거인(巨人)처럼
그 당당히 살아온 늙은 나무의 옛 추억과
지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유일한 존재 이유(理由)를 위해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미래로 가는 에움길일지라도
그대 결코 서두르지 말고
걷고 걸어가라

오뚝이 같은 뚝심을 지닌
늙은 감귤나무,
세미놀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내 입맛은 좀 독특하다, 아니 전혀 독특하지 않다, 그냥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냥 내 입맛일 뿐이다. 특별히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며, 제철음식과 제주산 위주로 먹는다. 쑥과 마늘이나 냉이, 민들레 잎, 토끼풀, 배추, 무, 갓, 죽순, 방풍을 즐겨 먹는다. 뿌리도 어지간하면 다 꼭꼭 씹어 먹는다.

해마다 구럼비(까마귀쪽) 열매나 광나무 열매, 산벗이나 왕벚나무의 버찌를 직접 채취해서 말리거나 생채로 절였다가 먹곤 한다. 비파와 자두, 복숭아, 살구, 무화과를 좋아한다. 수많은 귤 중에서, 하귤을 일등으로 좋아하고, 세미놀, 금귤, 팔삭, 영귤 그리고 마르메르를 참 좋아한다.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하고 아나고 소금구이와 옥돔미역국, 청국장 그리고 자리물회 보다는 자리강회를 더 좋아한다. 전복 푹 삶은 것과 특히 간장게장을 좋아하고, 군벗이나 거북손, 그리고 작은 바다 게 삶은 것을, 오독오독 씹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하귤은 저온저장고에 열 상자 정도 저장해두었다가 일 년 내내 먹는 편이다. 주로 씨가 있고 시고 당도가 덜한 귤 종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하귤의 겉껍질만 벗기고 속껍질과 씨를 그대로 전부 먹는다. 쓴 속껍질을 자근자근 씹노라면 시큼한 하귤의 즙이 입 안 가득 차고, 더 씹노라면 씨의 쌉싸름한 맛이 온 몸을 타고 내린다, 쓰고 시고 쌉싸름한 그 맛에 매번 중독이 되어 즐겨 먹곤 한다.

우리 집으로 가는 골목에는 토종 하귤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하나는 칠십년 정도 그리고 또 한 그루는 사십년 정도 되었다. 하귤이 좀 작은 편이면서도 마치 보름달이 뜨듯 황금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다. 그 귤들은 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새벽녘에 나가보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흰 귤꽃 피는 봄날에는 무더기로 수십 개씩 떨어져 있곤 한다. 그리고 용케도 대부분의 열매들은 여름까지 또 탱글탱글 여물어가는 새끼 초록열매와 더불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달 항아리’라고 불렀다.

무심히 집으로 가는 골목길이 갑자기 환해져 있었다. 긴 돌담 위에 마치 달 항아리들이 앉아 있듯이, 하귤이 줄지어 올려 놓여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인(mine)’, ‘나의 것’, ‘나의 하귤’ 이었다. 우리 골목에 살고 있는 일곱 가구 이웃집 삼촌들은 아무도 떨어지거나 혹은 여름까지 떨어지지 않거나 한 하귤들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먹지도 않는 것이다.

오로지 아침저녁 왔다 갔다 하는 시인만이 주워다 먹기 때문에, 낮 사이에 떨어진 귤들이 시인이 아직 귀가를 못한 사이에, 행여 사람의 발길이나 가끔씩 드나드는 택배 차에 짓밟혀 뭉개질까봐, 그 누군가가 전부 주워서 돌담위에 하나씩 올려놓은 것이었다. 집으로 달려가 큰 바구니를 갖고 와서는, 마치 달을 따듯이, 하귤들을 톡톡 담아 갖고 갔다. 그리고 시를 쓰면서 하나씩 까먹곤 했다, 그 누군가는 기뻤을까? 흐뭇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났고, 나는 매번 하귤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나중엔 결국 하귤 묘목 세 그루를 석파 선생한테 얻어다가 뒷마당에 심었다, ‘심은 뒤엔 꼭꼭 잘 밟아주라’ 고 해서, 뿌리 잘 내리고 성큼성큼 자라라고 꼭꼭 잘 밟아주었다.

2019년 4월 16일, 산책을 나간 하논길에, 오안 선생 농장의 붉고 작은 언덕에서 마치 거인같이, 등대같이, 온 몸에 훈장처럼 황금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활짝 웃고 서 있는 감귤나무를 보았다. 어디서 보았을까?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기억 속에 분명히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세미놀이예요, 예전엔 많이 있었는데, 전부 잘라버렸고 현재는 한 그루 남았어요, 몇 개씩 따다가, 여름까지 먹곤 합니다. 껍질을 까기는 좀 어려워도 물이 많고 향긋하고, 아주 맛있어요. 아마 60살 정도 되었을 거예요’

그 많았던 세미놀 감귤나무 중에 딱 한 그루가 남았다니, ‘너야말로 보석이로구나!’ ‘자르지 말고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시로 써줄게요, 그러면 더 반짝반짝 힘을 내겠지요?’ 한 봉지 세미놀 감귤을 얻어 돌아와, 하귤 보다 더 부드러운 속껍질과 과육 그리고 작은 씨를 꼭꼭 씹어 먹으며, ‘늙은 감귤나무를 위하여’ 시를 썼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마음 밭으로 날아와 ‘문상금 세미놀’이 되었다.

지독한 외로움과 처절히 싸우면서도 강한 수세로 붉은 땅 속 깊이 스며든, 그 수많은 눈물의 뿌리들이여, ‘참, 기특하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을 지키며 당당하게 황금열매 맺는 세미놀이여, ‘참, 대견하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오뚜기 같은 뚝심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늙은 감귤나무, 잘 무르익은 세미놀이여, ‘참 아름답다!’

세미놀은 바로 작은 달 항아리이며 꿈이며 생명이며 도전이다. 늙은 감귤나무는 나의 모습이고 너의 모습이며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한 그루의 감귤나무를 통하여 내가 본 것은 바로 붉은 흙을 뚫고 부단하게 뻗어나가는 뿌리의 꿈틀거림이었고, 그 수많은 잎과 잎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이승과 저승의, 그 강렬하고 날카로운 호흡소리 같은 것, 세상의 푸른 바다에 널리 울려 퍼지는 휙휙 휘파람소리, 그것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숨비소리였다.

기어코 기억이 떠올랐다. 1990년대 초, 신품종 세미놀 열풍이 불었다지, 활활 불타올랐다지, 그러다 한순간 판로가 막혔다지, 그랬다, 그 눈 벌건, 꿈들이, 하루아침에 농가마다 무너지는 소리들, 장탄식들, 그리곤 모두 톱을 들고 세미놀 감귤나무를 자르고 다른 귤나무로 대체하였다지, 일도양단(一刀兩斷), 그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슬픈 눈망울을 향하여, 톱날들은 쓱쓱 잘도 들었다지.

‘그랬다, 너는 망했다고,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고, 대낮부터 말술을 마셔댔지, 끝내 포기하고 싶은 삶이라고, 황소처럼 울부짖었지, 그 ‘포기’라는 말이 너무나 가슴을 쳐서, 하루 종일 친구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들어주며, 내 귀한 시간들은 시도 쓰지 못하고 다 흘러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젠 한마디 할게’

‘포기하고 싶었던 삶이었다고?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네가 아니라 세상이 너를 포기하고 싶었던 거였어, 신품종 신품종 좋아하지 마, 새 여자 새 여자 탐하지 마, 인연 따라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여자가 최고인 거야, 힘들다고 말술, 또 힘들다고 말술, 핑계 댈 것 없어도 말술, 애초에 너한테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기라도 했니? 너의 그 오만방자함을 때린 거야, 수레바퀴 밑 진흙탕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너의 방탕한 생활을 세상이 때렸던 거야, 오히려 이런 힘든 말, 저런 힘든 말, 질리도록 들으면서도 그 ‘포기’란 혹 ‘죽음’을 뜻하는가 하고, 가슴이 덜컥하여, 캐물어보지도 못하고 곁에 있었던 내가 오히려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시간이고, 삶이었다는 것을 알기나 해?’

‘나, 우연히 하논에서 세미놀 감귤나무를 만났어, 세미놀 먹으며 노래도 부르며, 어제도 오늘도 글도 쓰고 시도 썼어, 뭐 말만 들어도 신물이 다 난다고?, 한 주먹으로 다 뭉개버리고 싶다구?, 삼십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모양 그 꼴이니? 병신, 너 정신 차리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왜 너한테 욕을 하냐고? 나, 시인이야, 저승사자야, 천사이고 악마야, 너 몰랐니? 정말 포기하는지, 지옥까지 따라가서 두고두고 지켜본다고, 그 날에, 그 말술 먹는 날에, 내가 큰 소리로 쩌렁쩌렁 얘기한 말, 잊어버렸니? 나는 아직도 생생해, 아직도 모르니? 세미놀과 너와 나는 애증의 관계라는 것을’

뉴턴의 사과나무(Newton's apple tree) 후계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665년 아이작 뉴턴은 영국 켄싱턴의 집 뜰에 앉아 있다가 무심결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 사과나무는 뉴턴의 죽음 이후 전 세계의 대학, 식물원, 연구센터의 요청에 따라 후손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여러 나라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다.

나무는 접목을 통해서만 품종이 그대로 유지되며, 씨앗에서 자라면 품종이 바뀌게 되는 특성상, 현재 전 세계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 후손들은 전부 접목을 통해 품종이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1978년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뉴턴의 사과나무 원목의 3대손 3그루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도입되었으며, 국립세종수목원은 그 3대손으로부터 접목 증식하여 키운 4대손을 기증받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를 잇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나무도 대를 잇는다, 바로 후계목이다. 멸종위기식물이거나 귀한 가치가 있는 나무들은 미리 후계목을 양성해 놓아야 한다. 서귀포에는 내가 아끼는, 자주 가보는 후계목이 있다,

에밀 타케(한국명 엄기탁) 신부는, 1902년부터 제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1908년 4월 15일 한라산에서 관음사 지구, 왕벚나무 자생지에서 왕벚나무를 처음 발견해 유럽 학계에 보고를 했다. 벚꽃나무의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한국이란 점을 최초로 증명한 것이다. 이 왕벚나무의 후계목 한 그루가 서귀포성당 앞에서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이 왕벚나무의 후계목들은 전국 각지 그리고 특히 세계 각국에 널리 전달되어 제주 왕벚나무의 가치를 알리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서홍동 204’ 지번에 위치한 ‘제주 최초의 감귤나무’ 표지석에는 “1911년 제주 자생 왕벚나무를 타케 신부가 일본에 보내준 답례로 받은 미장온주 14 그루가, 최초 온주밀감(溫州蜜柑)의 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백년의 감귤 향기’ 마을인 서홍동 ‘면형의 집’에는 현해탄을 건너와 뿌리내린 제주도 최초 온주 감귤나무가 있었고, 아쉽게도 2018년 고령으로 인한 수세 약함, 무더위와 가뭄으로 110살 나이로 끝내 고사하였지만, 그 옆에는 지금도 후계목 한 그루가 당당히 자라고 있다.

가끔 두 종류의 나무 앞에 서서, 오래도록 바라다 볼 때가 있다. ‘안녕, 너희들은 참 험난한 여정의 길을 걸었구나!’ ‘언젠가 따뜻하고 희망찬 시를 꼭 써주마’

에밀 타케 신부를 위한 시도 쓰고 있다. 먼 이국의 땅에서 제주로 건너와 이곳저곳에 많은 흔적을 남겼으니, 그리고 이렇게 두 종류의 후계목을 한 사람에 의해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인연인가, 이 곳 제주에 쏟은 사랑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우리나라 국립세종수목원엔 천연기념물 후계목 정원이 있다. 아산 해암리 형제송 (충남 문화재자료 제243호) 후계목, 창덕궁 향나무 (천연기념물 제194호) 후계목, 창덕궁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472호) 후계목, 괴산 송덕리 미선나무 (천연기념물 제147호) 후계목, 강릉 방동리 무궁화(천연기념물 제520호) 후계목,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에 있는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07호) 후계목,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술지 마을에 있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482호)의 후계목 등이 잘 자라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기서 일일이 후계목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그만큼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소중한 사람이나 우연히 만나게 되는 귀한 존재들에는 이름이나 애칭을 붙여 자주 불러줄 필요가 있다. 시인은 어릴 적부터 우연히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시인의 주변은 모든 것들이 본래의 이름 말고도 또 새로운 이름이나 애칭이나 별칭이 있다, 그것들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불러줄 때마다 반짝반짝 특별한 보석이 되어 밝은 에너지로 또다시 시인한테로 돌아온다.

‘옳지, 하논에 있는 세미놀 감귤나무의 후계목을 키워보면 되겠구나’, 다행히 집에 화분에 심어놓은 탱자나무가 세 그루 있어서, 2020년 5월 7일에 두 개 정도 접을 붙여 달라고 오안 선생한테 부탁하였다. 신속 정확하게 접목작업은 이루어져서, 매일 쳐다보며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그러다 한동안 잊고 다시 6월 17일에 자세히 바라보니, 접목하고 씌워놓은 투명비닐 사이로 어린 새순이 정말 꼬물꼬물 돋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장마가 시작될 때는 그 푸르게 자라던 새순이 글쎄 한여름 땡볕에, 잠깐 다른 사정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그것들은 시인의 가슴처럼 바짝 타들어가 순식간에 말라버리는 것이었다, 물을 주고 부랴부랴 그늘로 옮겨놓았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이처럼 생살 찢어, 새로운 생명을 심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처음 시도한 하논 세미놀 후계목 양성은 실패하였지만, 언젠가 다시 한 번 부탁하여 봐야겠다. 튼실한 뿌리내리고, 무럭무럭 자라서, 혹여 시인이 살아있는 동안에, 세미놀이 주렁주렁 열리고, 매일 하나씩 따먹어 볼 수 있다면, 내 마음에도 밝은 달 항아리가 가득 열리겠지.

그리고 하논 세미놀 늙은 감귤나무 옆자리에도 후계목이 당당히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와 딸이 도란도란 마주앉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별빛처럼 쏟아낼 때, 세상은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것은 별 중에 푸른빛이 도는 별이, 가장 밝고 어린별이기 때문이다.

마치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천도복숭아를 따먹으며 위엄을 부리는 신선처럼, 이 보석 같은 서귀포에서 세미놀 감귤을 까먹으며 시인은 오뚝이가 되어 뚜벅뚜벅 시(詩)를, 그것도 최고의 시 한 편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늙은 감귤나무는 시인이고 잎과 뿌리는 창작 작업을 해나가는 호흡, 여정의 몸짓들이며 주렁주렁 열린 황금열매는 바로 시작품들이고, 시인은 그 향긋한 시작품들의 겉껍질을 까서는 속껍질과 과육과 씨를 꼭꼭 씹어 먹으며, 더 살아있는, 더 촉촉한, 누군가의 심금을 울리는 시를 써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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