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의 꿈
정호승
먼지는 흙이 되는 것이 꿈이다.
봄의 흙이 되어 보리밭이 되거나
구근이 잠든 화분의 흙이 되어
한송이 수선화를 피워 올리는 것이 꿈이다
먼지는 비록 끝없이 지하철을 떠돈다 할지라도
내려앉아
더 낮은 데까지 내려앉아
지하철을 탄 사람들의 밥이 되는 것이 꿈이다.
공복의 출근길에 승객들 틈에 끼여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당신을 찾아서》창비.2020
<정호승 시인>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인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몇 달에 한 번씩 서울 볼 일이 있어 공항에 내리면 코로나 19 전에는 리무진 차창에 기대어
바깥 세상 쳐다보며 가는 마음도 괜찮았는데 버스 노선 무기한 중단으로 어쩔수 없이 지하철 이용해야 했던 날이 많아졌다.
철로입구 승강장 에는 급행ㅡ완행이 덩달아 바쁘고 발 걸음이 바빠지고
출근 시간 맞추기 위하여 계단을 뛰고 오르며 물결이 휘청이듯
먼지와 사람들이 함께 휘날린다.
사람 냄새가 물씬거리는 서울 지하철역
자기가 먼지가 되고싶어 먼지가 된것은 아니라며
지하의 쇠가루가 아니라, 곰팡내나는 시커먼 균이 아니라
저 밖에서 웃고 있는 황토 흙처럼
지상의 흙먼지처럼 그렇게 곱게 내려앉아 보리싹 틔워 따뜻한 밥이되는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밥이고 싶은 것이다.
공복의 출근길 승객들 틈에 끼어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
먼지가 한 송이 꽃을 만드는 세상 이고싶다는 것이다.
봄의 흙이 되어 보리밥이 되고
한송이 수선화를 피워 올리는 것이 꿈이 라는...,
아무리 하잘것 없는 존재이나
어떤 시련 에 신문지 한 장이 날아와 그 무게를 감싸듯
더 낮은 데까지 내려앉아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따뜻한 밥이고 싶은
먼지에도 꿈이 있는 것이라고
정호승 시인은 명명한다.
먼지에게도 꿈이 있듯이 또 하나의 생명체가 못다이룬 꿈을 꾸며 생명선 따라 지하철 9호선에 몸을 실었다.
'먼지의 꿈'을 향해~
[글 김항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