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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9) 가축 양은 털갈이하지 않는다
[자청비](19) 가축 양은 털갈이하지 않는다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5.1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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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신문에서 두 장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다. 왼쪽 사진에서 양은 몸 위로 두꺼운 담요처럼 털을 몇 겹으로 두른 모습이었고 오른쪽의 사진은 그 양이 털을 깎은 후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랜스필드에 있는 동물보호소가 숲을 헤매던 양을 잡았을 때 이 양은 35kg에 달하는 털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나는 35kg을 상상해 보았다. 내가 마트에서 샀던 20kg짜리 쌀을 기준으로 한다면 거의 그 두 배에 달하는 무게이다. 20kg짜리 쌀 포대는 남편이 같이 마트에 가지 않는다면 나 혼자 낑낑대며 카트에 싣게 되는데 그 두 배에 맞먹는 털을 몸에 이고 숲을 헤매던 양은 발견되지 않았으면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보호소가 ‘버락’이라고 이름 붙인 이 양은 원래 주변의 농장에서 길렀던 양으로 추정되는데 버락이 35kg의 털을 지게 된 것은 가축화된 양은 야생동물과 달리 계절에 따라 털갈이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축화된 양은 인간이 털을 잘라줘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버락’의 모습을 박서련의 단편소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을 다 읽었을 때 다시 떠올리게 됐다. 이 소설에는 헬리콥터 엄마가 등장한다. 헬리콥터 엄마란 ‘아이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관여할 뿐만 아니라 지나친 보호를 하려고 하는 엄마’를 이르는 말이다. 이 소설의 엄마는 헬리콥터 엄마처럼 아들을 과보호한다. 소설의 엄마는 아들이 게임을 잘 하지 못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자 아들에게 게임 과외를 시켜주려고 게임 과외 선생을 알아보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이 직접 게임 과외를 받아 게임을 아들에게 가르쳐주려 했는데 예상외로 실력이 출중하여 엄마는 레벨이 높은 게이머가 된다. 이 소설은 헬리콥터 엄마를 과장하여 풍자한 소설이지만 요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엄마가 게임까지 대신해줄 때 아들은 자신의 주관 없이 수동적인 사람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소설 속 아이의 모습에 가축화된 ‘버락’의 모습이 겹쳤다.

소설 속 엄마처럼 엄마가 모든 것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아이들에게서 자율성을 빼앗는다면 아이들은 시키는 것만 하게 된다. 이렇게 자율성이 떨어지다 보면 현대 사회에 요구되는 창의성 계발은 더 멀어질 것이다.

이것이 아이 교육에만 국한되는 현상일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갖게 되는 의문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는 기술 강국인데 왜 백신을 못 만들어낼까하는 것이었다. 기초 과학 분야의 국가 보조와 투자는 많지만, 연구의 과정과 결과에 눈에 보이는 실적을 우선함으로써 실패할 확률이 적은 안전한 연구를 조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더 많은 변수들의 작용도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간섭과 통제가 기초과학 연구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아이에 대해 간섭과 통제에 의지하지 않고 서툴고 미숙하더라도 아이를 믿어주면 시간이 더디더라도 아이는 스스로 해나갈 것이다. 교육과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간섭과 통제를 최소화해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꽃피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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