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 시인
삶에는 전환기가 있다.
우리에겐 스물일곱 살 난 딸의 결혼이었다. 숨 쉴 틈 없이 살아왔던 삼십 년 시간에게 보상과 잠시 '휴(休)'를 주는 시간이었다.
남편과 결혼했을 때도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우리도 웨딩 촬영하기로 했다. 미미한 주름들과 두께가 겹친 살들, 거친 피부가 속상하고 마음 속에도 뿌연 안개 자욱했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나를 이끌었다. 기억의 첫 페이지는 늘 순결한 채 그대로 꽃꿈 속이다.
'그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웨딩드레스는 젊은 날의 꽃.
젊음을 맨 살에 입어본다. 마법이 일어났다. 백설공주가 되었다. 그동안 상대방에게 첩첩이 쌓였던 미움, 원망, 섭섭함들이 서서히 녹는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로 시간을 덮었더니, 거짓말처럼 새 감정이 돋아났다.
남편도 새신랑처럼 행복하게 웃는다. 우리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신뢰, 평화, 사랑의 별에 도착했다. 제 2의 인생 궤도로 마악 진입하고 안전한 속도로 운행하기 시작했다.
삶의 비밀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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