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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18) 화가 이중섭
[문상금의 시방목지](18) 화가 이중섭
  • 문상금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1.05.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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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寄贈)이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다. 아무런 대가 없는, 푸른 별 같은 반짝임이다, 설렘이다. 아아, 시퍼런 바다를 치달리던 갈매기처럼 오롯 설레는 날갯짓을 보았다. 바람보다 더 빠르고 돌보다 더 단단한 자유(自由)를 보았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나날이 깊어가는 바다의 등대(燈臺)가 되는 일이다. 때로 먼 바다 파도 소리로 귀를 열고 눈을 떠 밤새 영혼을 씻어내고 또 씻어내어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일이다.’

화가 이중섭(李仲燮)

문 상 금

육신은 삭고 그대 빛나는 이름을 보았다. 땅 끝 빈 그루터기 휩쓸던 그 성난 눈빛 잠재우고 이제 돌이 되었다. 바람이 되었다. 그대가 그린 그림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그리움이었다.

초가 납작집 골방에서, 부두에서, 혹은 거리에서 합판이나 담뱃갑 은박지에 물감이나 연필, 송곳으로 그대가 그리고 또 그린 것은 바로 그대가 존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理由), 서귀포 성당 삼종기도 종소리 너머 발가벗은 아이들과 게와 펄떡이는 바다 위를 치달리는 바로 시퍼런 자유(自由)였다.

그대가 돌이고자 했던 것처럼 바람이고자 했던 것처럼, 그대가 꿈꾸었던 그 푸른 날갯짓으로, 영원히 살아, 이 서귀포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소서.
 

- 제4시집 <꽃에 미친 女子>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신축년 힘차게 맞을 자, 이중섭의 흰 소를 보라.’ 지난 연말에 어느 신문 뒷면에 크게 실렸던 문구다. 그것은 아마 2021년 ‘흰 소의 해’를 맞이하여 역동적인 이중섭의 대표작처럼 씩씩하게 모든 일을 잘 헤쳐 나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흰 소’ 그림과 함께 그 문구를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며, 그 때 느꼈던 씩씩한 기상과 강렬한 이끌림에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

‘흰 소’는 화가 이중섭이 1954년경에 종이에 유채로 그린 대표작이다. 세로 30㎝ 가로 41.7㎝ 크기이며 현재 홍익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흰 소’는 거친 선묘와 소의 역동적인 자세 등이 작가 개인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또 한국의 토종 소인 황소를 흰색의 소로 표현한 것에서 백의민족인 한민족의 모습을 반영한 민족적 표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표현기법들을 엿볼 수 있는데, 바로 루오의 야수파적 감성의 영향에서부터 고미술품, 도자기의 장식기법과 고구려 벽화의 표현기법까지 다양한 영향관계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소의 묘사에서 보이는 강직한 구륵법(鉤勒法, 형태의 윤곽을 선으로 먼저 그리고 안을 색으로 채우는 방법)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나타나는 전통적인 표현법으로 볼 수도 있겠다.

1월에 바로 이 ‘흰 소’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중섭 미술관에 가서 판화 한 점을 구입하였다. 사진작업하시는 분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고 크기를 확대하여 액자에 끼우니, 아주 멋지고 역동적인 소 한 마리가 떡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그 ‘흰 소’는 두 분의 지인에게 보내졌다. 씩씩한 기상을 전해 받아 아마도 모든 일들이 만사형통으로 잘 풀려가고 있지 않을까, 이 해가 가기 전에 꼭 물어봐야겠다.

요 며칠 찔레꽃과 장미꽃을 미칠 듯이 보러 다녔다. 꽃을 볼 때가 가장 기쁘고 설레기 때문이다. 그런데 꽃을 볼 때처럼 기쁘고 가슴 설레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고(故)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2만 3천여 점 기증 소식이다.

시(詩)다음으로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시중유화(詩中有畫) 화중유시(畫中有詩)라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음을, 시와 그림은 원래 한 몸이었음을 안다. 본격적으로 시 창작을 하면서 이십대부터 미칠 듯이 크고 작은 그림들을 수집하였고 현재도 잘 보관하고 있는 그림 애호가로서, 너무 놀랐고 기뻤다. 그 컬렉션 중에, 짧고 굵게 살다간 천재화가 대향 이중섭의 대표작품 12점이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되어 온다는 소식에 심장이 다 콩닥콩닥 뛰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해변의 가족’ ‘비둘기와 아이들’ ‘아이들과 끈’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현해탄’ 유화 6점과 ‘물고기와 두 어린이’ 수채화 1점 그리고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냈던 엽서화 3점과 서귀포에 거주하던 시절과 연관 있는 게와 가족, 물고기, 아이들을 소재로 한 은지화 2점이 포함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만한 행운인가.

평안남도 평원이 고향인 이중섭이 피난을 떠나와서 작품 활동을 하였던 주요도시는 서울, 부산, 통영, 대구, 서귀포 등이다. 아내와 두 아들과 비좁은 방에서, 보리쌀과 고구마 그리고 게와 해초를 삶아 먹으며 작품 활동을 하였던 그래도 가장 행복하였다던 서귀포시절은 고작 일 년도 채 안 되었다. 서귀포시(민선초대시장, 오광협)에서 당시 ‘신의 한 수’ 라 할 정도로 아주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 1995년을 ‘미술의 해’로 명명하면서, 정부차원에서 157개의 사업들을 선정 기획하여 미술과 관련된 많은 행사들이 기획되었다. 작품 활동을 하였던 여러 도시에서 아직 큰 관심이 없었을 때에, 서귀포시에서는 1995년 11월 18일, 이중섭 피난 거주지(김순복 할머니 거주) 한 켠에 대향 이중섭을 기리는 작은 기념 표석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1996년도에는 매일시장(현 매일올레시장) 입구 사거리에서 솔동산 입구 사거리까지 360m의 구간을 ‘이중섭거리’라 지정하게 된다. 이것은 제주도에서 사람 이름을 따서 거리 지정을 하게 된 최초가 되었다. 1997년도에는 반대여론들도 많이 있었지만, 당시 민선초대 오광협 시장님의 과감한 결단력이 오늘의 이중섭거리를 있게 한 것이다. 1997년 9월 6일, 서귀포시에서는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대향 이중섭 기일 41주기에 맞추어 일본에서 건너오신 이 남덕 여사와 여러 문화예술인 그리고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피난 거주지 입구에서 이중섭거리 지정 및 거주지 복원 그리고 대향 전시실 개관 기념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에 이중섭전시관은 제2종 미술관으로 등록하게 되었는데, 많은 예술의 나눔과 공유를 실천한 기증자의 노력이 있었다. 국내 최초 이중섭을 기리는 전시관이 원화 작품과 소장품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던 가나아트 이호재 회장은 2003년 이중섭의 ‘바다가 보이는 풍경’등 원화 8점을 비롯, 이중섭과 친분을 맺고 예술적 여정을 함께 한 근, 현대 작가(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등)의 작품 66점을 기증하였던 것이다.

2004년에는 소장품 부족으로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갤러리 현대의 박명자 회장께서 ‘파란 게와 어린이’ 작품을 비롯하여 박수근, 허백련, 도상봉, 백남준 등의 작품 총 54점을 기증하여, 이중섭미술관은 드디어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되어 오늘날 수많은 관람객들이 즐겨 찾는 미술관이 된 것이다. 내년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또 12점의 원화들이 선물처럼 기증되어 날아왔으니, 정녕 축복이랄 수밖에 없다. 이중섭이 이상향의 세계라고 하였던 서귀포는 화가 이중섭과 깊고 좋은 인연으로 나란히 손 붙잡고 이중섭거리 알자리 동산을 날아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98년 가을부터는 제1회 이중섭 예술제가 시작되어, 서귀포예총에서 주관하여 해마다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필자는 이중섭 예술제가 열릴 때마다 사회나 시낭송을 하곤 했었는데, 그 무렵 쓴 시가 바로 위에 있는 ‘화가 이중섭’이다.

이중섭 그림 속의 소재는 주로 소와 아이들, 꽃과 게 그리고 물고기와 새 등이 등장한다. 굵직한 터치와 색감들이 가족 간의 사랑과 절절한 그리움 그리고 자연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이중섭은 자유로운 기질의 소유자로 예민한 감수성과 순진무구함, 외골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한다. 이러한 성격은 격렬한 필치와 강렬한 색감, 날카로운 선묘로 표현되어 야수파 화풍과 잘 어울린다.

나는 일주일에 대부분을 이중섭거리에 간다. 시낭송도 하고 공연도 열고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 일도 하고 피고 지는 꽃들도 보고 또 어쩌다 시간이 날 때 밤낮 걸어보곤 한다. 어쩌면 서귀포에서 유일하게 자유스럽고 또 외로워도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고 또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2019년 소암기념관에서는 서귀포시 공립미술관 공동기획 <예술의 두루 나눔> 의 일환으로 ‘故 청원 변성근 기증 작품전’을 마련했다. 1996년 10월에 청원 선생(2009년 작고)은 소암의 ‘취시선’을 비롯 한평생 혼신의 열정을 쏟아 전국에서 수집하고 소장해두었던 귀중한 미술품들을 환갑을 맞이하여, 서귀포의 문화 창달을 위해 106점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이전에 이미 기증된 작품도 서·화·판각을 포함해서 25점이나 되었다 한다. 당시 수필가 정수현 선생에게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영원한 소장이 될 것이오’라고 거침없이 말씀하셨다던 일화가 남아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필자도 청원 선생과 인연이 있어서 서귀포 중앙로터리에 있는 2층 사무실에 종종 놀러가서 오래된 병풍과 동양화들을 구경하곤 하였다. 시아버지와도 친분이 있어서, 결혼 주례도 서 주셨다. 나중에 서홍동 우리집 뒤편에 작고 평화로운 언덕배기 아래 자택에서 생활하시다, 2009년 지병으로 작고하셨다.

미술품들을 탁월하게 잘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돈은 물론이거니와 시간, 소장할 공간 그리고 뛰어난 안목과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교류,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품에 꽂힌 지독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소장을 잘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엔 전부 옷을 입혀준다. 그 옷이라 하는 것은 그림인 경우 유리액자에 넣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습기와 빛에 의한 변색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다. 그 섬세하고 소중하게 보관하던 것들을 기증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방대하다, 미칠 듯이 놀랍다, 깊이와 안목이 있다, 미래를 내다본다, 누군가 해야 할 시대적 의무이다, ‘이건희 컬렉션’ 미술관을 별도로 신축하여 전체 기증 작품들을 죄 모아도 좋을 뻔하였다.

고(故) 이건희 회장과 화가 이중섭은 어떤 면에선 많이 닮아있다. 지칠 줄 모르는 그 열정들, 수없이 꿈꾸었던 시퍼런 자유들이 하늘로 바다로 치달릴 때, 스스로 별이 되어 영원한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저 밤하늘의 큰 별들처럼.

삶이란, 때로 미칠 때도 있는 것이다. 그 눈부신 광기(狂氣)의 끝은 이런 봄날, 기증이란 가장 멋진 선물로, 봄 햇살처럼 가득 쏟아져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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