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순간의 예술 디카시 감상
탈모
무명초 한가닥 부스러질때
깊은 땅을 파는 한숨소리
나 아닌 내가 나를 보고있다
_ 손병규
손병규 시인
경북 구미거주
시사모 회원
한국디카시인 모임 회원
지난주부터 몸이 흔들리도록 아팠습니다 코로나19 시절에는 감기도 몸살도 앓으면 안 되는 게 예의인데,
아무튼 어제부터 컨디션이 조금씩 돌아오고 오늘 아침에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제가 아프다니까 지인들이 하는 한결같은 말이 '이제 아프면 늙는다'입니다
우연히 거울 앞에서 만난 흰 머리카락
처음에는 새치라고 주장하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염색 두세 달에 한 번씩 하던 염색은 점점 주기가 단축되어 요즘은 한 달만 지나면 온통
희끗희끗 봄날 산벚꽃이 핀 앞 산꼴입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노안老眼에 풍치에 관절에서는 비명소리가 나고 자꾸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모두 시간이 준 유쾌하지 않은 선물이지요
민들레꽃 포자가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시인은 '탈모'를 노래했습니다
시작노트를 보니 동심을 함께한 친구들이 이순의 나이로 접어들며 탈모로 인한 푸념이 한 편의 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를 이십 대의 청년이 썼다면 어땠을까요
또 다른 느낌을 주겠지요
이순을 앞둔 시인의 '탈모'는 그것조차 자연스럽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읽힙니다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무례한 손님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오지요 그리고는
종종 우리를 겁박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속상한 흔적까지 남깁니다
탈모도 그중 하나지요
탈모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속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 나온 흔적이니까요
박범신 작가가 쓴 '은교'라는 소설 속에 이런 말이 나오지요.
"너희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 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며칠 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 씨가 오래전 이런 인터뷰를 했더군요
끝맺는 말로 하겠습니다
'육십이 돼도 인생을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살겠니
처음 살아보는거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 밖에 없고, 계획 할 수 없어
그냥 사는거야 그 나마 하는거는 하나씩 내려 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
[글. 구수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