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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17) 첫사랑
[문상금의 시방목지](17) 첫사랑
  • 문상금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1.04.26 11: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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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벚꽃이다. 벚꽃이 아름다운 건, 특별해지는 건, 활짝 핀 날들이 짧기 때문이야. 첫사랑처럼, 감은 눈 속에서도 밤낮 자근자근 피어나는, 이 환장(換腸)하는 봄날’

첫사랑

문 상 금

다시 사는 생(生)이 온다면
너와 나 알아볼 수 있을까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로 만난다면
천둥번개처럼 온 세상 울리는 소리로
사랑할 수 있을까

거친 들판의 흰 찔레꽃처럼 만난다면
찔레꽃의 향과 빛깔로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아아, 또다시 사는 생(生)이 온다면
높은 소리 되어 고운 향과 빛깔 되어
들판 위를 하늘 위를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까

눈부신 보석 같은
내 보석 같은
첫사랑
 

-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4
▲ 문상금 시인4 @뉴스라인제주

남녀의 사랑은 영원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진다. 이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진실을 이제야 조금씩 터득해 가는 것 같다. 사랑에 있어서는 확실히 늦깎이다. 지금껏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 믿었다. 지고지순한, 하나의 마음이라 믿었다, 큰 오산이었다. 짝사랑이니, 첫사랑이니, 영원한 사랑이니 하는 것들은, 한순간 눈부시게 활짝 피었다 순식간에 져버리는 벚꽃처럼,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흑장미처럼 그리고 천둥번개처럼 우르르 쾅쾅 왔다가 온 세상 울리는 소리로 사랑하다가, 느닷없이 사라진다.

어쩌면 사라져버린 것도 아니다, 단지 열정이 식었을 뿐이다. 사랑의 호르몬이라는 도파민 분비가 조금 줄어든 것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인 것처럼 금방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또 금사식(금방 싫증을 잘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더욱 영원한 사랑이란 말은 점점 퇴색되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젠 사랑도 날 것의 생물(生物)처럼 움직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각박함 속에서 위태위태한 줄을 타고 있다.

사랑은 기쁨과 설렘이며 종착지는 이별이며 처절한 고통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고 종내는 가슴이 숯처럼 타다 못해 다 녹아내릴 것임을 미리 예측하면서도 왜 단 한 순간이라도 사랑에 빠지기를 열망하는 것일까, 또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이토록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존재 이유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사랑 이야기는 전설이 되고 설화가 되고 스토리텔링이 되어 감동으로 살아남는다. 모든 예술작업은 바로 이러한 삶이나 과정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그리고 그 예술작업들의 시작과 끝, 궁극적인 목표는 당연히 사랑이다. 사랑이 가진 무한한 에너지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된다. 한국서민문학의 대표적인 불후의 명작, 춘향전이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사랑이란 소재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연처럼, 운명처럼, 느닷없이 다가온다.

사랑은 결국 호르몬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dopamine)의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뇌는 격렬한 에너지와 흥분을 일으켜 활력이 넘치고 기쁨과 웃음이 많아지며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활동은 마약 중독자의 뇌 활동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니, 참 놀라운 일이다. 흑장미처럼 활짝 불타오르고 분수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격정적인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고작 삼년이라니,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두 개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한다. 미성숙한 사랑의 길과 성숙함으로 가는 사랑의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폭발적인 유효기간이 끝난 사랑 앞에서 미성숙으로 그만 사랑을 끝낼 것인지 아니면 신뢰와 노력과 존중의 관계로 서로 감사하며 사랑을 지켜나갈 것인지, 그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은 매일 선택하는 일이다. 그 선택이 최선(最善)이 될 때, 격정적이었던 사랑의 도파민은 해마의 한 부분에서 기쁨과 행복을 주는 기억으로 남아, 오래도록 미소 짓게 해줄 것이다. 성숙한 사랑의 길로 부단 없이 걸어갈 때 비로소 영원한 사랑으로 한 발 내딛게 되는 것이다.

기쁨의 기억, 설렘의 기억, 행복한 기억들은 시(詩가) 되어 세상으로 날아간다. 영혼을 울리는 한 편의 황홀한 시가 되어, 비로소 성숙한 사랑 , 영원한 사랑으로 그 누군가의 가슴을 흔들고 감동을 주고 또 불멸의 사랑을 꿈꾸게 만드는 것이다. 거친 들판의 흰 찔레꽃처럼 은은한 향과 고운 빛깔로, 푸른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이다.

마흔 무렵에 허리까지 찰랑이던 생머리를 싹둑 자르고 꽁지머리를 남겼다. 가끔 사람들이 만져보기도 한다. 진짜인지, 왜 남겼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조용히 말한다. ‘이 머리카락은 내가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이랍니다. 그리고 차차 내가 이루어나갈 미래와 도전이지요.’ ‘그럼 이 꽁지머리가 안 보이면, 꿈과 사랑과 도전이 모두 이루어진 미래의 어느 멋진 날이겠네요!’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다.

나에게 사랑이란, 모두가 첫사랑이다. 하루하루가 새날이 되는 것처럼, 모든 그림이 처음 그리는 그림이 되는 것처럼, 첫사랑은 짧지만 아주 특별하고 강렬하다, 눈부신 보석이다, 환장할 만한 영감(靈感)을 주곤 한다.

사랑에 관한 시를 참 많이도 썼다. 제5시집 <첫사랑>에는 부끄러움 무릅쓰고 속내를 다 내보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사랑의 본질이나 바탕을 아직도 열심히 건너고 있는 여정(旅程)인지도 모른다.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처럼, 거친 들판의 흰 찔레꽃처럼, 제주 섬을 한 바퀴 빙 돌아, 철썩철썩 , 흰 파도가 달려왔다 사라진다. 그것들은 결국 소멸이라고 또 소멸이라고.

결국 영원한 사랑은, 최선의 선택을 할 때, 불멸(不滅)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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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 2021-04-29 12:56:56
정말 주옥 같은 글 입니다.
첫사랑처럼 열정있게 사시는 작가님이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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