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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5) 100년 전의 페미니스트, 나혜석
[자청비](15) 100년 전의 페미니스트, 나혜석
  • 김순신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1.04.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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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김순신 수필가
▲ 김순신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며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한 조선 여자, 화가라는 말에 담긴 예술적 이미지와 유럽을 여행한 그녀의 지적인 세련됨을 상상하곤 했다.

그녀가 살았던 구한말 시대는 암울하고 봉건적 시대였다. 신분이나 위계에 따른 질서는 강조됐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하여는 소홀하였다.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어 남편이 축첩을 거느려도 조강지처는 아무 소리도 못 했던 시대였다.

아버지가 딸보다 한 살 위의 어린 여성을 첩으로 들이는 상황이 나혜석 집안에서도 벌어졌다. 여성으로서 아버지의 행동을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나혜석은 1896년 수원의 부잣집에서 2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경성 진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한다. 서양화를 공부한다. 당시 서양화 전공은 유별나고 남다른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언론에서 그녀의 유학 생활이 가끔 보도되곤 했다.

그녀는 유학 중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 최승구를 사랑한다. 최승구는 조선에 아내가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최승구는 결핵으로 결국 세상을 떠난다. 첫사랑의 비극은 나혜석을 몹시 힘들게 했다. 고통의 터널을 헤매고 있을 때 김우영을 만나게 된다. 김우영도 아내를 잃은 상처가 있는 남자여서 둘은 가까워진다. 김우영은 혜석보다 열 살이나 위이고 당시에는 변호사였다.

김우영의 적극적인 청혼으로 둘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

두 사람의 결혼은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 김우영에게 요구한 내용은 이렇다.

“일생을 두고 지금과 같이 나를 사랑해 주시오.”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마시오.”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케 해 주시오.”

당시 사람들은 당돌한 여자, 염치없는 여자, 이기적인 여자, 못된 여자, 별난 여자라 했다. 김우영은 무조건 혜석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는 신혼여행 중 혜석의 첫사랑 최승구의 묘지까지 동행하였고, 묘에 비석까지 세워준다.

이 부분에서 김우영이 혜석을 깊이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나혜석은 결혼생활 11년 만에 1남 3녀의 어머니가 되었으나 결국 이혼당하게 된다. 그녀가 쓴 <이혼 고백장>에는 김우영과 가까워지게 된 내용과 결혼생활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연애 당시에도 헌신적이었으며, 결혼 후에는 선량한 남편이었고, 자식들에게도 자애로운 아버지였다. 혜석은 어떻게든 이혼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고 싶었으나 둘 사이에는 부부로서의 신의가 깨어진 상황이었고, 남편 김우영의 단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조선의 봉건적 사회에서 그녀의 편에 서는 사람들은 없었다. 남편을 두고 바람피운 여자로 낙인을 찍는다. 남편이 있을 때는 ‘화가 나혜석’으로 그녀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해 주던 사람들도 이혼녀가 되자 모든 시선이 싸늘해졌다. 예술가 나혜석은 사라지고 바람피워서 ‘이혼당한 여자’라는 주홍글씨가 점점 깊게 찍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을 곧추세우려 무진 애를 쓴다. 재기하려고 다시 미술 전시회를 준비하였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랭한 시선뿐이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건강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식도 못 만나게 되고, 가족도 혜석을 냉대하여 점점 외로움속에서 버티면서 어떻게든 잘 살아내려고 한다.

친구였던 일엽 스님이 있는 수덕사로 찾아가 세상을 등지고자 했지만, 인연은 닿지 못했다.

수덕여관에서의 생활도, 양로원 생활도 그녀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없었다.

1948년 어느 날 거리에서 나이 60세쯤으로 보이는 무연고자의 주검이 발견된다. 그 사람은 52세의 나혜석이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차가운 세상 한복판으로 맨발을 내디뎠던 그녀는 용감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는 건 시대가 그녀의 신념을 포용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당시 나혜석과 같이 한 발 앞서가는 이들에 대한 배척과 편견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어쨌거나 나혜석은 100년 앞서가는 페미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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