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내가 뭔가에 대해 어렵게 설명하려고 하는구나, 느낄 때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광령 새마을 문고 작은 도서관에서 강의해달라는 문의를 받았을 때였다. 나는 강의 주제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쓰기>로 정하고 자료 준비를 시작했다. 다 아는 얼굴들이 강의를 들을 거라서 편한 분위기겠지만 신변잡기나 늘어놓고 뜬구름 잡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도서관에 틀어박혀 몇 달 동안 강의 내용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강의가 있던 날은 조금 일찍 도착해서 문고 회장님과 회원들이랑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예지아빠가 오늘 과수원에서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를 봤는데 알을 훔쳐가려는 줄 알고 비둘기 엄마가 자기한테 덤벼들더라며 사진을 보여주기에 그 얘기 소설에 써먹어도 되겠냐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회원들이 받을 유인물은 챙겼지만 내가 정작 강의하려고 준비해놓은 파일은 집에 놔두고 왔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두고 온 강의 파일에는 도서관에서 며칠 동안 여러 책을 읽으며 자료 조사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에 대해 고찰한 심리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도 간단히 소개하고 왜 요즘 인문학이 뜨는가 진단도 내리고 그럴 예정이었다.
그러나 내 가방에 강의 파일이 없다는 걸 알아챈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기 시작했다. 몇 번 파일 메모를 보면서 연습도 했건만 한 시간 강의를 다 채우지 못할 거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준비한 파일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집어먹고 놔주지 않아 앞이 캄캄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어차피 강의 주제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쓰기>이므로 말주변은 별로 없지만 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자 비로소 마을 주민들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구차한 내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사범대학생 때 연극으로 빠져서 학점은 엉망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졸업하던 해에 임용고시가 처음 실시 됐고 데모하느라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빙긋이 웃기 시작했다. 나의 숨겨진 인생사가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어떻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나'를 치유했는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준비했던 파일 속 내용 몇 가지가 또렷이 기억났다.
그러나 머리에 떠오른 몇 가지 자료의 파편들은 새로운 강의 내용과 흐름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강의는 벌써 내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들을 어떻게 꺼낼 것이며 그것들이 타인에게 접해졌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 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강의 전에 커피를 마실 때 예지아빠가 보여주었던 사진과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 비둘기가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자 알을 훔쳐가려는 줄 알고 날개를 퍼덕이며 덤벼들더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주민들과 같이 공유했다.
'내'가 경험한 것을 의미화시키면 이것이 훌륭한 스토리가 되고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지라도 훗날 이것이 내 글쓰기의 자산이 되리라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는 얘기들을 했다.
유인물에 들어있는 직접 써보기를 하고 정리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강의를 마치면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열심히 준비한 파일을 집에 놓고 와서 두서없이 내 신상만 털었노라고. 웃음소리가 커졌다. 박수 소리가 들리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에 힘이 쑥 빠졌다.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책을 낸 작가입네 하고 어려운 얘기들을 하려던 게 잘못된 방향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경험이 소설을 쓸 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내가 자꾸 어렵게 설명하려는 부분이 나타나면 ‘어이, 박 선생, 너무 힘 들어간다, 힘을 빼시게’하고 옆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