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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45) 컷트
[양순진의 시의 정원](45) 컷트
  • 양순진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1.01.30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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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호 시인
홍지호 시인
▲ 홍지호 시인 @뉴스라인제주

컷트 

홍지호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며 거울 속에서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또한 잘려 나갔던 무언가를 상상하며 흐느끼는 거울 속 가위.
변주가 핵심인 히든트랙이 흘러나오는 오디오에서 
또한 흘러나오는 퍼런 새벽 서슬.

새로운 머리와 새로운 생활 긴 싸움의 끝
다른 싸움이 기다리는 곳

곧 누가 문을 두드렸나요
문을 열려고 하는 사람
누군가요

히든트랙까지 들었으니 많이 잘라내야 했다

당연한 건 없어 분명하게 말했지

당연한 건 없지
그래 없지

그 대목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 대목에서는 무슨 말이라도 할걸

세상에는 중요한 것들만 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뿐이야

누군가요 더 중요한 것이 생겨서 문제야
그게 문제야


새벽도 지나간다는 생각

생각 앞에 무너지는 기장
무너지는 히든트랙

부서지는 퍼런 이름 서슬
찰칵찰칵 가위소리

소리
소리라고 충분히 써도 소리라고 써도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이름
쓰면 보인다

이름 이름 이름 이름

이름이라고 써도
들리지 않는다

새벽이라고 아무리 써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새벽으로 가는 이름
아무리 써도

무너지는 기장
무너지는 히든트랙
부서지는 이름 새벽으로 가는

잘려 나갔던 무언가를 상상하며

거울 속 가위에게
다시 한 번 컷트를 위탁하는 거울 속에서 잘려 나가는 그 대목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걸
무슨 말이라도 할걸


생각도 지나간다는 새벽

중요한 싸움이 기다리는 곳


  ( 2015년,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작)

   -시집 <사람이 기도를 울게 하는 순서>, 문학동네, 2020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싹둑' 잘릴 때 흐트러지는 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눈물이다. 나풀거리는 건 미련이 아니라 불안이다. 오래된 습관과의 결별과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 사이에서 거울은 마술을 부린다.

멈출까 더 나아갈까를 읊조리다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히든트랙. 잘려나가는 것이 머리카락뿐일까. 신뢰, 추억, 불멸, 인연, 방금 들은
고백까지도 싹둑, 제어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새로운 길로 나서겠다는 의지다. 너라는 암을 잊겠다는 선고다. 더 붉은 꽃을 따겠다는 미래지향적 사고다.

싹둑, 어둠을 자른다. 싹둑, 너를 자른다. 싹둑, 긴 전쟁을 종료한다. 타인에게 위탁했던 나를 환유한다. 폭설주의보처럼. [글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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