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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롬이야기](54) 철조망에 가슴 찢겨 울던 슬픈 체오롬
[오롬이야기](54) 철조망에 가슴 찢겨 울던 슬픈 체오롬
  • 문희주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1.01.08 22: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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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서쪽 들판에서 본 체오롬
▲ 서쪽 들판에서 본 체오롬 @뉴스라인제주

- 울어 지샌 오롬에 붉은 철쭉 눈물마른 체오롬언덕 -

앞서 오롬이야기에서 송당 안뜰은 동서남북이 밧돌-안돌-거슨세미-체오롬이 감싸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그 중에 거슨세미나 거문오롬 같이 굼부리가 보이지 않게 긴 경우는 긴U자형이라면 체오롬은 중간U자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체오롬은 송당리 산64-2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나 서쪽 능선일부는 덕천리 산2번지로 나뉘어 있다.

제주도 오롬이 368개라면 368개의 모양이 모두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대동소이한데 체오롬은 그 모양이 사뭇 다르다. 동쪽 멀리 용눈이, 손지오롬 쪽에서 보는 체오롬은 마치 머리를 숙이고 상대를 노려보는 레슬링 선수의 어께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막상 북동쪽 아래쪽에서 보는 모습은 초대형 만타가오리Mant-lay가 날개를 쳐들고 큰 입을 열어 삼키려는 듯 섬뜩함을 느낀다. 그러나 반대편 남서쪽에서 보는 체오롬은 고래 등을 보는 듯 등등한 모습이다.

체오롬 등성이에서 본 굼부리
▲ 체오롬 등성이에서 본 굼부리 @뉴스라인제주

체오롬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제 275대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이원조(헌종 7년, 1841~1843년 재임)가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을 저술 할 때 그 책 ‘산천山川’ 조에 표기된 명칭이 있다. 여기에는 제주목 43개, 정의군 24개, 대정현 15개 도합 82개 제주 오롬 명칭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체오롬은 ‘기악箕岳’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곳에는 ‘체지 체의 체악帖岳’, ‘몸 체자의 체악體岳’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체오롬은 본디 송당에서 부르기도 ‘체오롬’, 또는 ‘골체오롬’이라고 하였다. 이는 그 모양이 마치 체-제주어, 한국어의 키나 골체-제주어, 한국어의 삼태기를 닮은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서 ‘기악箕岳’은 한국어로 그 모양을 의역意譯한 것이다. ‘기箕’는 한국어에서 곡식을 까부는 데 쓰이는 ‘키’를 말하는 한자어로 그 뜻은 ‘쓰레받기’, ‘두 다리를 뻗고 앉다’는 뜻처럼 체오롬의 모양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체악(帖岳, 體岳)’은 제주어 체오롬의 음을 빌어서(음차音借) 쓴 것으로 특별한 의미(뜻)를 가진 것은 아니다. 몽골어에서는 엘게크ЭЛГЭГ라고 쓰인 걸 보면 무관한 것 같다.

체오롬의 굼부리로 들어가 보면 양쪽 굼부리 중간에 조그만 알오롬이 하나 있다. 이는 마치 양쪽 굼부리 끝과 오롬 능선이 마치 가오리 주둥이 속에서 혀를 내밀어 상대를 삼키려는 괴물의 모양을 닮았다. 그 모습 그대로 체오롬은 가득 찬 원시림과 우거진 잡초 속에 개발하다가 중단된 것이 개발하다 정지된 구좌읍의 현실과 너무나 닮았다. 물론 체오롬은 개인 자산이 되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

동쪽 길에서 본 체오롬
▲ 동쪽 길에서 본 체오롬 @뉴스라인제주

중학교 3학년 때인 52년 전 이야기다. 동네 친구들 네다섯 명이 진달래를 보러 갔었다. 제주도 해변 마을에선 진달래도 철쭉도 볼 수 없는데 시詩에도 노래에도 진달래꽃이 나오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송당에 사는 이모부가 세화 5일장에 오셨는데 진달래 얘기를 해서 가르쳐 달라 졸랐다. “그래 송당으로 오면 가르쳐 주지” 해서 우리는 버스도 없는 6킬로 산길을 걸어 체오롬까지 갔었다. 우리는 처음 보는 황홀한 꽃에 취하였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철쭉꽃을 진달래라 불렀다는 것은 육지생활 사오십년 만에 제주로 귀향해서야 알게 되었다.

50년 만에 귀향하여 체오롬을 보니 개인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옛날 없던 철조망이 여러 곳으로 둘려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유자도 여럿인 것 같았다. 지난 해 보았더니 철탑을 세우면서 파헤쳐진 곳에는 철쭉고목들이 허옇게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속으로부터 솟아오른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혼자서 한참을 퍼질러 앉아서 정신 잃은 양 멍하니 일어서지 못했다.

또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굼부리 동남쪽으로 올라보기로 하였다. 능선 중앙으로는 철조망이 치였는데 편백나무가 일렬로 빽빽이 심겨져 있고 능선 밑 남쪽 기슭에는 45도 정도의 기우려진 비탈에 떼죽나무가 숲을 이루고 담팔수, 도토리나무들은 잎을 떨구었는데 그 아래는 작살나무, 꽤꽝나무(쥐똥), 찔레, 망개 넝쿨이 엉클어졌어도 비탈 아래는 목초 밭이 푸르다.

남쪽, 안돌오롬 아래서 본  체오롬
▲ 남쪽, 안돌오롬 아래서 본 체오롬 @뉴스라인제주

남쪽 등성이 중심에는 편백나무들이 경계를 이룬다. 굼부리 북쪽으로는 가파르게 절벽을 이루고 아래편 남쪽으로는 낙엽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천선과, 담팔수, 오리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보리똥나무들이 많다. 그러나 굼부리 끝 지점 남쪽편 굼부리의 볕 바른 곳은 ᄎᆞᆷ동백, 사철나무, 구실잣밤나무, ᄎᆞᆷ가시나무, 사스래피 등의 상록수들이 가득하다. 굼부리 중앙에 서면 굼부리 남쪽으로는 푸른빛 상록수들이고 북쪽으로는 잎이 져버린 허연색 낙엽수들이다.

채오롬 굼부리는 좁지 않다. 가운데는 커다란 후박나무가 정자나무처럼 자리 잡았고 주위에는 자연산 상록수들이 줄지어 서있다. 굼부리 안에는 굼부리를 둘러친 말굽형 능선이 바람을 막아 주어서 천연 요새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일본군들이 대동아전쟁기지로 쓰기에 좋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 체오롬 굼부리에 와보면 충분히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남쪽 굼부리 능선을 따라서 가파르지 않은 오롬을 오르노라면 한라산을 비롯한 남서쪽 오롬들이 환히 보인다. 그러나 북동쪽으로는 줄지어 선 편백나무가 경관을 가린다. 굼부리 중앙 능선에서 철조망을 따라서 목초가 심겨진 푸른 벌판으로 미끄러지듯 하산한다. 키 자란 황새풀 사이로 가막살(까마귀쌀)나무가 붉은 열매를 맺혔다. 쌀을 찾는 까마귀 울음이 비끼는 저녁놀에 처량하다. 가까운 곳에 이종 누이가 가꾸는 8000평 당근 밭이 오늘따라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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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 2021-01-11 09:59:37
오름 하나 하나를 세밀하게 그려주셔서
읽다보면 오름 올랐던 기억이 절로 소환됩니다.
역사, 언어, 지형지질, 문학 등 인접 학문을 망라해서
통섭적으로 서술해 주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김흥만 2021-01-11 05:00:11
그 생긴 모양이 마치 체-제주어, 삼태기를 닮은 데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는 혹시 제주어 "푸는채 " 표준어 (키 )가 아닌가 생각 되는데, 곡식을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 할때 사용하는 도구 .

박해동 2021-01-09 18:05:58
그 생긴 모양이 마치 체-제주어, 삼태기를 닮은 데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
체오름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며칠 전인가 문교수님이 올린 글을 보니
수필과 에세이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면서
여기 오름 이야기들은 중편 에세이에 가깝다고 한 글을 읽어보았는데
이 글의 전개에서 오름의 어원과 그곳이 자리하고 있는 지형 및
그곳에서 서식하는 식물들이며 또 그 곳에서 느끼는 작가의 마음들을
잘 담아내고 있는 오름 이야기는 앞으로 제주 향토 문학사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려진 글 중에 세번 째 사진(동쪽 길에서 본 체오름이 매우 친숙한 풍경으로 닿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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