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수면
정운희
무의식 속에 내가 간절하다
내가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있다
가까울수록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을 떼버리고
그들과 약속한 약속도 버리고
지긋지긋한 나의 현상을 빠져나와
어슬렁거리는 개이고 싶다
정오의 어둠 속에서
버려진 저 얼룩에 코를 묻고
오해나 미움이 있으면 잘 씻어말려
다시 제자리 찾아서 놓아두고 바라보고 싶다
옥수수 파는 늙은 여자의 오후이고 싶다
소반에 잘 쪄진 옥수수 올려놓고
졸음이 오는 한여름을 끄덕거리며
달콤한 바람과 바람나고 싶다
꿈속에서 꿈에게 말을 걸듯
섬자락에 걸터앉아 갯벌 속을 들락거리는 구름이고 싶다
구름과 구름이 모여드는 그늘이고 싶고
구멍 속 오랜 이야기고 싶다
미칠 듯이 그럴 때 있다
그냥 고장난 꿈이고 싶을 때 있다
내가 아니라서 행복할 것 같은 잠꼬대를 흥얼거린다
누가 내 잠꼬대를 엿들었는지
지구 밖으로 떠밀려 와 있는 신발 한 짝
-<왜 네가 아니면 전부가 아닌지>,푸른사상, 2020
<안녕, 딜레마>의 시인 정운희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왜 네가 아니면 전부가 아닌지>라는 시집을 발간했다.
역시나 사물의 확장, 내면의 확장, 꿈의 확장법이 대단하다. 언제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플라나리아처럼 여러 개의 자아를 창출해낸다. 그리고 역설과 반어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뒤엎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이렇게 장황한 현상을 빚어내지만 결국 제 안의 근원적 자아로 귀환하려는 몸부림이다.
'어슬렁거리는 개'이고 싶고, '옥수수 파는 늙은 여자의 오후'이고 싶고, '구름'이고 싶고, '그늘'이고 싶고, '고장난 꿈'이고 싶다며 지구 밖으로 떠밀려 가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일뿐, 중심은 잃지 않는 저 단단함!
나도 모르게 그녀의 철학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글 양순진 시인]